2024/02/10 12

가난한 목회자! 부한 목회자!(신18:1-8)

가난한 목회자! 부한 목회자!(신18:1-8) 제사장과 레위인은 종교적 직무와 교육 및 행정등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구별된 자들이었다. 본문은 이미 여러차례 언급된 제사장과 레위인에 관한 규례로서 백성들이 마땅히 바쳐야 하는 십일조에 관한 상세한 내용과 제사장과 레위인이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을 수 있는 근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생업을 위해 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에게는 기업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역에 전심 전력하는 자의 생계는 하나님께서 친히 책임져 주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오늘날 목회(사역자)의 재정적 빈부 격차 문제는 교회의 가장 아픈 부분 중 하나다.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딤전4:11)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디모데전서4:10-11) 소망이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우리에게는 산소망, 온전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어떤 일, 어떤 것, 어느 시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시기 때문에 이 땅에서 우리의 수고와 힘쓰는 것이 의미 없는 고통이거나, 아까운 낭비의 시간이 아니고, 소망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에서의 모든 수고와 힘쓰는 것까지도 기쁨이고,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음력을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대개 음력의 1월1일을 또 하나의 시작의 날로 기념하여 지키는데 우리도 한해를 이렇게 두 번 ..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막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막 8:15) 입술로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마음은 떠나 있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을 부인하며, 말과 혀로만 사랑할 때가 많습니다. 이웃의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고 정죄하며, 이웃을 자기 욕망의 수단으로 여기고, 선 줄로 생각하는 오만함이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에게 임한 은혜. 이제 용서 받은 죄인으로 오늘을 삽니다. 겸손하며 행함과 진실함이 있게 하소서!

수난설화(3)(막14: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막14:1) 수난설화의 시작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구한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미 그런 생각을 굳힌 인물들입니다.(막 11:18) 복음서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과 가장 심각하게 대척점에 섰던 이들은 물론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런 보도는 복음서가 기록되던 시대의 상황을 어느 정도 감안해서 읽어야합니다.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함락된 이후 유대사회에는 바리새파 운동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이 운동은 유대교 체제 안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굳히고 있던 원시기독교 공동체를 압박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배경으로 복음서가 기록되었기 때문에 복..

수난설화(2)(막14: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막14:1) ‘수난설화’라는 단어가 불편하게 들리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특히 설화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창조설화라는 말도 있고, 기적설화라는 말도 있습니다. 홍수설화도 있습니다. 일정한 형식의 이야기를 가리켜 설화라고 합니다. 설화가 불편하면 ‘이야기’라고 바꿔 불러도 괜찮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분명하게 일치하는 내용과 형식을 갖춘 게 바로 수난설화입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복음서마다 조금씩, 또는 크게 다릅니다. 예수님의 탄생설화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마태와 누가에만 나오지 마가와 요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 말씀이 마가와 요한에는 나오..

수난설화(1)(막14: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막14:1) 네 복음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대목이 이제 마가복음 14장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이야기인 ‘수난설화’가 그것입니다. 출가, 광야의 시험, 갈릴리로부터 사마리아를 거쳐 유대와 예루살렘에 이르는 과정에서 행한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행위들이 바로 이 수난설화를 위한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비슷한 내용과 구조로 되어 있는 수난의 정점은 십자가 처형입니다. 오늘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수난을 너무 기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서 수난을 당하셨다고 말입니다. 극단적으로는 인간의 죄를 배상하기 위해서 십자가로 죽으실 수밖에 없었다고도 말합니다. 이런 주장은 자칫..

이어령 '세배를 드리는 이 아침에' / '새해에 주님이 주시는 복 많이 받으세요'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세배를 드릴래요. 무릎을 끓고 세배를 드릴래요. 옛날 어릴 적 그 마음으로 세배를 드릴래요. 그러나 동전을 던져주시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못난 이 자식들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어떻게 한 해를 살까. 그것을 가르쳐주십시오. 땅굴을 파며 두더지처럼 비굴하게 살지 않으려면, 그래서 광명한 햇빛이 비껴 흐르는 그 벌판에서 기를 펴고 살려면 어떤 용기가 필요한가를, 그것을 가르쳐주십시오. 많은 세월을 살아온 당신들의 슬기를, 우리에게도 나눠 주십시오. 추악한 주름살만이 늘어가는 그런 세월이 아니라 말갛게 말갛게 씻겨 이제는 파란 이끼가 끼는 바위처럼 의젓하게 나이를 먹는 슬기를 귀띔해 주세요.” 이어령 교수님의 세배를 드리는 이 아침에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설날 ..

변방에서 중심을 (막 1:12-20)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매우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공적 임직식을 끝내자마자 성령에 의하여 광야로 몰아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40일동안 사단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마가복음은 시험받은 내용이 없습니다. 마태와 누가의 기록에 나타납니다. 광야 40일의 기도는 첫 사람 아담이 실수하였던 죄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회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승리함을 통하여 예수님이 구약이 증거한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드러냅니다.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게 된 후에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십니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변방 갈릴리로 가십니다. 나사렛을 지나 더 변방인 갈릴리로 가십니다. 그리고 중심인 예루살렘을 깨우기 위한 준비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사역은 사도들의 사역이 되었고 교회의 본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시작이라 (막1:1-11)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세례요한을 통해 준비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통해 세례를 받으십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고 하였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왕으로 임직하셨습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늘 아버지의 선언입니다. 이제 주님은 창조 중보자이며 구속 중보자로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복음인 이유입니다. 구속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고백하는 기쁨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사명자의 길

사명자의 길 글쓴이/ 봉민근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누군가 하겠지 하는 생각은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잃어버린 자의 생각이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하시는 물음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했던 이사야의 고백이 믿는 내게 필요하다.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 사명자는 핑계하지 않는다. 사명자의 길은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이다. 고난이 있지만 그 길은 영광스러운 길이다.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명의 자리로 나가야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찬송만 부르는 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듣기 좋은 말에만 은혜받았다고 하면 안 된다. 은혜란? 말씀에 응답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