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수난설화(2)(막14:1)

새벽지기1 2024. 2. 10. 06:45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막14:1)

 

‘수난설화’라는 단어가 불편하게 들리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특히 설화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창조설화라는 말도 있고, 기적설화라는 말도 있습니다. 홍수설화도 있습니다. 일정한 형식의 이야기를 가리켜 설화라고 합니다. 설화가 불편하면 ‘이야기’라고 바꿔 불러도 괜찮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분명하게 일치하는 내용과 형식을 갖춘 게 바로 수난설화입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복음서마다 조금씩, 또는 크게 다릅니다. 예수님의 탄생설화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마태와 누가에만 나오지 마가와 요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 말씀이 마가와 요한에는 나오지 않고 누가에는 크게 변형된 형태로 나옵니다. 이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수난에 관한 이야기는 모든 복음서에서 거의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분량도 많습니다. 이를 볼 때 수난설화는 복음서가 기록되던 초기 기독교에서 이미 일정한 형식으로 전승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배신, 유월절 만찬,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체포, 산헤드린 심문, 빌라도 심문, 골고다에서의 처형, 숨짐, 요셉의 가족묘지에 장사됨, 빈 무덤이 그 이야기를 구성하는 재료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처형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노골적으로 반대한 인물로 등장한 베드로는 초기 기독교인 모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수난 받고 죽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나 유대인들의 종교적 입장에서나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처형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는 바울의 지적은 사실이었습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의 수난과 처참한 죽음을 구원의 길로 고백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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