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9 12

우리가 주님을 만난 곳이 바로 그 십자가다(신20:10-18)

우리가 주님을 만난 곳이 바로 그 십자가다(신20:10-18) 본문에서 모세는 병역 의무자의 자세에 이어 이제 전쟁 수행 지침을 주고있다. 그 핵심은 가나안에서 멀리 있는 성읍과는 전쟁 전에 먼저 화친을 제의하고, 화친이 성립되면 조공을 받고 섬기게 하고, 만약 화친을 거절하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고 그 성읍의 남자는 모두 죽이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동시에 나타난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즉 하나님께 나오는 자에게는 무조건적인 은혜를, 대적하는 자에게는 공의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을 만난 곳이 바로 그 십자가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로새서3:17) 우리의 삶이 무엇을 하든지 즉 그것이 말이든지, 일이든지 자기 생각 대로, 되는 대로, 나오는 대로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합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앤 보스캠프라는 사람은 "천개의 선물"이라는 책에서 아장아장 걷던 동생이 고양이를 따라 걸어가다가 대형트럭에 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날부터 온 가족에 드리운 슬픔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고, 자신도 그 안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감사하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받은 것을 다 열거하고 있..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밤새 뒤척이다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꿈을 꾸었는지 비몽사몽 간에 헤맸는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카오스였습니다. 잡히는 것도 없고 얘기가 되지도 않습니다. 또한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도봉산은 여전합니다.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봄을 재촉하는 빗줄기에 잔설이 사라졌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에 간직해야겠습니다. 꽃을 시샘하는 그 무엇이 아름다운 모습을 소환하길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니 아프기도 합니다.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니 더욱 그러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변명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 일들과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죄성으로 인한 많은 흔적들도 소환되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허물이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

카테고리 없음 2024.02.19

예수 승천과 하나님 우편 (벧전 3:18-22)

사순절 1주, 2024년 2월 18일 베드로전서는 1:1절에서 수신인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거론된 지명은 모두 지금의 튀르키예에 해당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베드로전서가 기록되던 시기는 네로가 그리스도인을 유별하게 박해하던 60년대이거나 도미티안 황제가 박해하던 90년대라고 합니다. 집필 연대를 특정할 수는 없으나 박해받던 시기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에는 특히 ‘고난’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2:19절에서는 부당한 고난을 겪어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으라고 했고, 4:13절에서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까 오히려..

성만찬(4)(막14: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막14:22) 초기 기독교는 이 성찬식 때문에 인육을 먹는 집단이라는 오해를 받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오해받을 만한 종교의식을 기독교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종교의식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유대교의 유월절 만찬 전승과 예수님의 죽음을 구원의 길로 받아들인 기독교 신앙이 하나로 융해되었다는 사실이 놓여 있겠지요. 물론 후자가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십자가에 달렸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죄의 ..

성만찬(3)(막14: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막14:22) 주님은 제자들에게 빵을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요즘의 성찬예식에서도 이 예식을 집전하는 목사가 빵을 들어 “이것은 주님의 몸입니다.”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 서로 다른 입장들이 있습니다. 첫째, 로마 가톨릭 교회는 화체설을 주장합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사제가 “이것은 주님의 몸입니다.” 하고 선포하는 순간에 빵이 주님의 몸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이런 주장을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물론 빵이 실제로 살로 변할 수는 없습니다. 분자구조 자체가 변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

성만찬(2)(막14: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막14:22) 예수님은 떡을 들어 축복(축사)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축사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만찬에서 행하는 습관입니다. 다음과 같은 구절입니다. “땅에서 빵이 생기게 하신 세상의 왕, 주, 우리 하나님이시여, 찬미 받으소서.” 이런 축사에서 우리는 빵 한 조각에 담긴 창조주 하나님의 은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빵 한 조각이 어떻게 우리 앞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경우로 바꿔서 밥을 생각하는 게 좋겠군요. 봄에 농부들이 심은 벼가 자라는 과정은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1억5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태양의 빛과 지구 대기..

이익을 남겨야 하는 청지기 인생 [2024. 2. 19. 월. 일터소명 묵상]

이익을 남겨야 하는 청지기 인생 (누가복음 19:15-17)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우리 크리스천의 정체를 ‘청지기’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청지기의 역할은 오늘 우리 시대에 적용하면 ‘장사하는 것’, 즉 ‘비즈니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직업인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팔아서 수익을 얻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인생은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비즈니스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일을 하는 직업인도 인..

사명을 잊은 자에게

사명을 잊은 자에게 글쓴이/봉민근 오늘도 인생의 밤은 깊어간다. 멈출 수 없는 시간에 나를 맡기고 오늘 하루도 달린다. 인생은 끝이 있다. 그리고 짧다. 병들고 늙어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면 세상을 막살게 되고 헛되게 살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삶의 터 위에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 땅에 우리가 온 것은 그냥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분명한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사명을 깨달아야 인간답게 살 수가 있다. 사명이 없는 자는 자기 욕심대로 살다가 간다. 그야말로 짐승과 다를 게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랑할 것이 없다, 짐승도 가죽을 남기고 가축은 고기를 남겨 남을 유익하게 하는데 인간이 되어서 짐승만도 못하게 살아서야 되겠는가? 창조주를 기억하는 자..

좋은 인간관계

좋은 인간관계 하버드대학 의과대학 정신과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는지 알기 위해 75년간 남성 724명의 인생을 추적해 연구해 왔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 행복은 부(富)나 성공, 명예, 혹은 열심히 노력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좋은 인간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부로 다루고, 우리 마음대로 하고, 흠잡고, 위협하고, 비난하며 관계의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다른 사람의 태도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