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시편 130편: 바라고 기다린다

새벽지기1 2024. 2. 18. 06:12

해설:

이 시편은 ‘데 프로푼디스’(De Profundis, “깊은 곳에서”라는 의미의 라틴어)라는 이름으로 사랑 받아 온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순례자의 노래’ 중 하나이며, 일곱 개의 회개 시편 중 하나입니다. 

 

“깊은 물 속에서”(1절)라는 말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곤경에 대한 비유입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져서 죽어가는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기도자는 자신의 영혼이 속절 없이 바다 속으로 침몰해 가고 있는 것 같은 상황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의 소리를 들어 달라고 호소합니다(2절).

 

이어서 기도자는 자신이 깊은 곳에 처한 이유를 밝힙니다. 그는 지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죄책감에 끌려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자신을 지켜 보고 계시다고 느낍니다(3절).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입니다. 기도자는 그 무거운 죄의 짐을 벗겨 달라고 호소합니다(4절). 

 

이렇게 기도한 후에 기도자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5-6절). 밤을 새워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이 아침이 와서 교대할 수 있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히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아직 하나님의 응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희망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7절과 8절에서 이 기도는 공동체의 기도로 변화됩니다. 기도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자하심”(‘헤세드’)과 “속량하심”이 하나님께 있으니, 오직 그분만을 바라고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묵상:

인생 여정에 깊은 물 속에 빠지는 것 같은 순간은 늘 잠복해 있습니다. 어느 때, 어떤 이유로 끝도 모를 깊은 물 속에 던져질 지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갑작스럽게 찾아 온 질병으로, 예기치 않게 당한 사고로, 믿었던 사람에게서 당하는 배신으로 혹은 무거운 죄책감으로 그런 상황에 처합니다. 발에 바닥이 닿으면 치고 올라가겠는데, 한 없이 빠져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끝났구나!’ 싶은 순간입니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영원에 내던져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둠 뿐인 영원은 숨을 멎게 만들 정도로 공포스럽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사용할 무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인자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의 ‘헤세드’는 헬라어의 ‘아가페’와 같은 의미입니다. 상대에게 그럴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격과 조건에 상관 없이 쏟아 붓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 사랑을 믿기에 우리는 깊은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도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구원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자는 흉한 죄를 짓고 그로 인해 하나님에게 내던져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분을 바라고 기다린다고 고백합니다. 그분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깊은 물 속에 처하면, 이성이 작동을 멈춥니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깊은 물 속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려면 평소에 꾸준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성이 작동을 멈췄을 때에는 평소에 몸에 배인 행동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평안할 때 신실하게 기도의 자리를 찾은 사람만이 깊은 물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