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겟세마네(10)(막14:39,40)

새벽지기1 2024. 2. 26. 04:16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막14:39,40)

 

어제 묵상의 마지막 단락에 오해가 따를지 몰라서 한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우리의 영적인 시야를 세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첫 단계는 눈이 감긴 상태, 두 번째 단계는 어렴풋이 열리는 단계, 세 번째는 환하게 열린 상태입니다. 이런 단계가 시험을 쳐서 점수를 매기듯이 확연하게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구별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겁니다.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단계, 조금씩 들리는 단계, 완전히 소리와 일치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 마지막 단계를 득음(得音)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일반적인 신자들은 대개 첫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교회가 가르쳐주는 것을 추종하거나 성서를 문자적으로만 따를 뿐입니다. 형식적으로는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로 일부의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 안에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그들에게는 궁금한 게 많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부활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세 번째로 아주 일부의 신자들은 궁금한 상태를 넘어서 무언가 영적인 현실성을 맛보는 희열을 종종 경험합니다. 자기 나름의 영적인 길을 구도자처럼 갈 수 있습니다. 성서기자들과 지난 기독교 역사에서 또렷한 족적을 남긴 신앙의 선배들처럼 이런 사람들은 생명의 빛을 만난 거지요.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빛에 들어섰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에 어둠에 휩싸기도 합니다. 다만 그 어둠에 완전히 갇히지는 않습니다. 여름 소나기구름에서 벗어나듯이 이 사람은 다시 빛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허락하소서.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겟세마네(12)(막14:41)  (0) 2024.02.27
겟세마네(11)(막14:41)  (0) 2024.02.26
겟세마네(9)(막14:39,40)  (0) 2024.02.26
겟세마네(8)(막14:38)  (1) 2024.02.25
겟세마네(7)(막14:37)  (0) 2024.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