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5 13

그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이 이 말씀 안에 있습니다.(골로새서3:16-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로새서3:16-17) 이 말씀에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정말 지혜로웠으면 좋겠고, 그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서로 위로하고, 혼자 있을 때나, 두세 명이 만나거나, 다같이 모였을 때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항상 감사는 마음이 넘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무엇을 하든지 작은 일이든지 큰 일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며, 기도 가운데 하나님 ..

악인의 피 흘린 죄 (삼하 5:1-12)

"11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삼하 5:1-12) 아브넬의 죽음은 이스라엘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스보셋은 손의 맥이 풀렸습니다. 절망에 떨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허수아비였던 이스보셋을 보좌하였던 신하들입니다. 그 가운데 바아나와 레갑입니다.이들은 모두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공의가 없고 사욕만 가득하였습니다. 이들은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 머리를 다윗에게로 가져갑니다. 이스보셋의 끔찍한 최후가 다윗에게 알려집니다.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셋을 통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들의 행위에 대하여 징계를 내려 사형에 처합니다. 그 이유는..

다윗 왕의 탄식 (삼하 3:27-39)

"39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삼하 3:27-39) 피 흘림없는 평화, 언약 가운데 이뤄질 통일이 눈 앞에 왔지만 한 순간에 무너짐을 경험합니다. 아브넬의 생각이 의도치 않는 상황으로 흘러갑니다. 요압은 아브넬을 헤브론으로 불러서 그를 죽입니다. 약속이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은 자신의 동생 아사헬의 죽음에 대한 복수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용서라는 용기를 내어야 하는데 복수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과의 언약적 평화통일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피 흘림이 있은 후에 통일을 이룹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고 통곡을 합니..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게 하옵소서! (2022.9.25, 주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 어릴 때 할머니께서는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으시면 일단 기도부터 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때 아마 차량의 안전 운행과 목적지까지 여행을 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셨을 텐데, 그 모습이 정말 경건하게 보였습니다. 한 후배가 자동차를 타고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안전 운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했으리라고 짐작이 되는데 그 모습 역시 경건하게 보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가 생활화된, 쉬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때나 어디서나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기도해야만 경건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어디서나 소리 내어 기도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길 한가운데에 서서 사람들..

샘이 한 구멍으로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2022.9.24, 토요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야고보서 3:11-12). 야고보서 기자는 지도자의 말에 대해 강조하면서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질문을 합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야고보는 샘이 한 구멍으로 단 물과 쓴 물을 내는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10절). 우리가 찬송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찬송하는 입으로 사람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은 자가당착입니다. 물..

하나님 나라 공동체 (4)(막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예수의 가족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인식과 행위가 일치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만 그럴듯하게 할 뿐이지 실제로 행동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특히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게 많을수록 손발이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인들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각종 이론은 머리로 꿰뚫지만 실제로 몸은 잘 따르지 않습니다. 이건 그 사람의 인간성에 관계되는 게 아니라 지식의 속성에 관계된 것입니다. 지식은 일단 머리를 필요로 합니다. 습관적으로 머리를 돌려서 무언가의 원리를 찾고 해결책을 ..

하나님 나라 공동체 (3)(막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결국 우리의 질문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문이 막힙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누구일까요? 아무도 이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세례 받을 때 배운 대답을 알기는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며, 종말에 이 세상을 완성하실 분이십니다. 그는 세상을 초월해 계시면서도 세상 안으로 들어오신 분이십니다.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런 식의 대답을 우리는 계속 끌어나갈 수 있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완전한 대..

에스겔서 34장: 목자들에 대한 심판

해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목자와 양에 비유하는 것은 구약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시편 23편이 가장 유명합니다. 주님은 그 비유를 이스라엘의 왕과 정치/종교 지도자들에게 적용하십니다. 왕과 지도자들은 참 목자이신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려움 당하는 양들을 돌보기는 커녕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양들을 이용했습니다. 그 틈에 양들은 노략 당하고 유리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목자들을 폐하고 당신의 양떼를 도로 찾아 오겠다고 하십니다(1-10절). 주님께서는 몸소 양떼를 돌보겠다고 하십니다. 흩어져 유리 방황하는 양들을 다시 모으고 기름진 이스라엘 산지에서 좋은 풀을 뜯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양떼들 가운데서 살진 것과 힘센 것을 멸하실 것..

위기에 처한 ‘오직 성경’ / 김병기 목사 (주의영광교회)

교회 타락의 근본 원인은 신앙과 삶의 유일한, 최종 법칙인 성경에서 멀어졌기 때문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특징은 “계시 의존적 신앙”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들의 신앙과 삶에 있어 가장 근본적이고 최종적인 권위는 목회자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교회 조직에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성경에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자들이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물론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귀한 직분을 맡은 선생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사람의 교훈으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거짓 선생들이 존재해 왔다 (벧후 2:1). 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주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고 성령의 전으로 세워져 가고 있는 영적..

두려움은 불신앙이다.

두려움은 불신앙이다. 믿음이 있고 없고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움으로 사느냐 그렇지 않으냐로 판가름할 수가 있다. 믿음이 없을 때는 두렵다. 모든 것을 자신이 담당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그리고 약속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모든 것을 맡기고 살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하려고 하니 모든 것이 힘이 들고 삶의 무게가 버겁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바다를 걸었던 베드로는 인류 최초로 바다 위를 걷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는 순간 그는 물속에 빠졌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