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9 14

95. 브엘세바의 은혜_2.부요

[기도]​ ​ 아버지 하나님, 믿음으로 하루를 엽니다.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의 임재에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 [말씀]​​​ ​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창21:30~31) [묵상] ​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비록 척박하고 치열한 땅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여준 브엘세바의 부요함을 생각해 봅니다. ​ 영국의 부흥사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마지막 말씀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으로 브엘세바를 묵상합니다. 사람들이 살지 못하고 살 수 없는 땅, 사람들이 싫어하는 브엘세바로 ..

가나안 남북 전쟁의 의미!(창14:1-12)

가나안 남북 전쟁의 의미!(창14:1-12) 본문은 가나안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4개국과 가나안 남부 사해지역의 5개국이 관련된 전쟁 기사로, 성경에 나타난 국가간의 첫 연합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전쟁의 원인은 가나안 남부의 5개 사해 동맹국들이 12년 동안 조공을 바치며 섬겨오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맹주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반역했기 때문이었다(1-9절). 전쟁의 결과는 5개 사해 동맹국들의 비참한 패배로 끝났다(10-11절). 그리고 그 결과 당시 소돔성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이 포로로 끌려갔다(12절). 이 전쟁은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의 주역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이후 아브라함은 당시 롯을 포로로 잡아간 가나안 북부군을 격파하고 롯을 구출했기 때문..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디도서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디도서2:11-13)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고, 구원을 완성하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믿고 구원받은 성도를 말씀으로 양육하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전히 경건한 삶을 살 수 없고, 이 세상의 정욕을 따라 살 수밖에 없고, 절제 할 수도 없고, 의로울 수도 없고, 이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엡 4:1-16)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엡 4:1-16) 비밀의 경륜을 말씀한 후에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교회 세움의 원리를 말씀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저절로 새워지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자녀들로 말미암아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주의 자녀가 가지고 있어야 할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부르심을 받은 일을 합당하게 감당하게 해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일에 대하여 부당할 때 교회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합당한 자세가 되어야 교회가 세워집니다. 1) 합당한 자세는 겸손과 온유함으로 부르심을 감당합니다. 2) 오래참음과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함으로 감당합니다.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킴으로 부르심을 감당합니다. 바울은 특별히 성령이 하나 되게..

1만 권의 독서 후 사업을 시작한 일론 머스크

1만 권의 독서 후 사업을 시작한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는 하루에 2권씩 책을 읽고 자랐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부터 하루에 열 시간 동안 공상과학소설을 계속 읽어 왔다. 경영자이자 엔지니어인 그에게 기계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어디서 얻느냐고 묻자 그는 ‘책을 많이 읽는다’라고 간단하게 답변했다.” 윤영돈 저(著) 《독습》 (예문, 23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세계적인 전기 자동차업체 ‘테슬라’, 우주선 만드는 ‘스페이스 X’,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뉴럴 링크사’의 CEO이자,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현실 롤모델입니다. 그는 1만 권의 독서를 한 뒤 사업을 시작해 성공한 CEO로 유명하며, 하루 10시간씩 독서 하는 것을 즐겨하는 독..

사악한 비즈니스의 욕망, 그 비참한 말로! (2022년 9월 9일 금요일)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창세기 34:22-23).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야곱이 에서와 20년 묵은 원한을 풀면서 감동적으로 해후한 후 세겜 지방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 추장 세겜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겜은 이후 디나를 깊이 사랑하게 되어 결혼해줄 것을 청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 일을 수치로 여기면서 그 땅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으면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짓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

열두 제자 (2)(막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하필이면 열두 명일까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유대인들에게 12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열두 지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열두 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에게 뿌리가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전승에 따라서 열두 지파의 분류가 약간씩 다릅니다. 거기에는 레위 지파와 요셉 지파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원래대로 한다면 레위와 요셉이 당연히 열두 지파에 속하지만,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레위 지파는 종교 업무를 담당해야하는 까닭으로 제외되고 대신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한 지파의 몫을 분배받았습니다. 사실 이 두 아들은 요셉이 이방인인 ..

열두 제자 (1)(막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막 3:13) 막 3:13-19절은 열두 제자를 부르고, 사명을 주신 사건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들이 바로 열두 사도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정확하지 않습니다. 열두 제자, 또는 열두 사도에 대한 내용도 복음서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그런 건 조금 복잡하고, 현재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접어두기로 하지요. 우선 예수님이 왜 제자들을 부르셨는지 잠시 생각해보시죠. 이 문제와 연관해서 우리는 세 가지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 당시 랍비들의 일반적인 행태를 따른 것인지 모릅니다. 둘째,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볼 수 있을까요? 열두 제..

에스겔서 20장: 불신의 유산

해설: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지 7년째 되는 해(주전 591년) 5월 10일에 유다의 장로 몇 사람이 에스겔에게 찾아와 주님의 뜻을 묻습니다(1절).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답해 줄 말이 없다고 하신 다음(2-3절),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열거합니다. 먼저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집트에서 구해 내셨다는 사실을 언급하십니다(4-6절). 주님은 그들을 구원 하시면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7-9절). 그들이 광야에서 유랑할 때 주님은 율법을 전해 주셨는데, 그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10-13절). 그 일로 주님은 그들을 심판 하셨지만 아주 멸하지는 않으셨습니다(14-26절)..

‘기복신앙’과 ‘고난은 축복이다’에 대하여 / 문성환 장로(남포교회)

기복신앙과 고난에 대한 기존의 오해를 피하고 본래적 의미를 잘 알고 적용해야 소위 ‘기복신앙’이 기성 교회와 교인들에게 어떤 폐해를 끼치고 있는지는 이미 주지의 사실일 것이며, 이에 대항하여 여러 복음주의 교단에서 ‘고난은 축복’이라는 주제의 메시지를 균형 있게 증거하고 있음은 정말 귀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 너무 단순하게 표현된 이 두 개의 명제들이 신앙적으로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도 있다. 예를 들어, ‘운동은 건강에 좋다’라고 누가 말한다면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명제가 항상 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논리학을 빌려 오지 않더라도, 이 경우엔 ‘운동은 일반적으로 건강에 좋다’라고 표현함으로서, ‘일반적으로’라는 제한적인 수식어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