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8 13

107. 항상 기뻐하라

[기도/말씀]​ ​ 주님,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 샘솟듯 솟아나게 하시며. 주님 부르실 때까지 그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배경/해석]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 예수 믿고 난 후에 이전과 다른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존재가 된 저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시기 위하여 3가지를 명령어를 ..

주 안에서 평안하지요?

참 좋은 계절입니다. 이렇게 때를 주관하고 계신 분이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신비롭게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또한 그분께서 우리의 창조주 되심과 우리를 구원의 주 되심이 신비롭고 감사하게 됩니다. 함께 믿음의 길을 가게하심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지요? 일상 가운데 안부를 묻고 지내지 못함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기도 가운데 교통하고 있음에 감사하네요. 그러나 위해 기도하고 있다하지만 여전히 피상적이네요. 주 안에서 견실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며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기쁨으로 섬기며 지혜롭게 기업을 가꾸어가길 기도하고 있지요. 하여 비록 얼굴을 대한 지 꽤 오래 되었지만 형제는 낯설지 않네요. 무엇보다도 자매가 지난 날 겪었던 어려움에서 온전히 자유케 되며 이전보다 더 강..

인간의 연약함!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 신실하신 언약!(창20:8-18)

인간의 연약함!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 신실하신 언약!(창20:8-18) 본문은 아브라함의 불신앙적 행위를 보여주는 연속 부분이다. 즉 사라를 취하려다 꿈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경고를 들은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아브라함의 행위를 책망한 사실과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변명이 기록되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 가지다. 첫째, 인간의 연약함이다. 비록 부족한 인간이지만 오직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에 의해 구속사를 이루어 가셨다. 둘째,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행동을 질책하거나 그를 벌하기 보다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사라를 지켜주셨다. 셋째,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이다. 본문에는 언약의 상대자(아브라함)의 불성실로 인하여 그 언약이 파기..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시편88: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시편88:9). 시편 기자는 매일매일 주님을 부르며, 주님께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은 기도는 기도하는 자의 젖줄이고, 밥줄이고, 생명 줄입니다. 특히 곤란한 처지에 놓이고, 곤란한 일을 당하여 눈이 쇠하도록 주님을 바라며 기도할 때 곤란한 일을 풀어주십니다. 지금 모든 일이 너무 순탄하고 평안합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순탄함과 평안함 속에서 하나님과의 동행의 풍성함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게 해주시길 기도하십시오. 지금 아무 일도 없고, 그렇다고 하나님과 교제도 없고, 그냥 세상의 물결 따라 떠내려가듯이 살고 있다면 지금부터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기..

예수의 가르침 (5)(막 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불교의 선종(禪宗)에서는 화두(話頭)가 가르침과 배움의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스승이 제자에게 말의 머리만 제시하고 제자가 스스로 깊은 사유를 통해서 어떤 깨우침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콩놔라팥놔라 하고 일일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자가 생각할 수 있는 방향만 제시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교육에서도 이런 스스로의 깨우침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육의 내용이라 할 영에 대한 체험은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는 게 아니라 영이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비록 성령에..

예수의 가르침 (4)(막 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가르침은 배움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돼지 앞의 진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히 진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된 배움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선입관이 배움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천동설에 묶여있는 사람은 지동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레드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사람은 북한과의 상생과 평화관계를 꿈꾸지 못합니다. 율법에 묶여 있는 사람은 복음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

에스겔서 36장: 모든 것이 새롭게 될 날이 온다

해설: 36장에서 주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해 말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원수들은 이스라엘의 산들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소유가 되었다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심판하고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황폐 해졌던 산들이 울창 해질 것이고 성읍들이 들어설 것이며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방 민족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못할 것입니다(1-15절). 이어서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죄악에 심하게 물들어 있었고 그로 ..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평신도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가? / 이승구 교수(합신, 조직신학)

세상에서 다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있다. 우리들은 상당수의 단어들을 그 근원도 생각하지 않은 채 사용한다. 그러나 어떤 단어들은 특정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 너무 분명하기에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 지를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런 단언의 하나로 “평신도”(laymen)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천주교적 사상을 담아 천주교에서 형성된 용어인 평신도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평신도라는 용어는 천주교에서 나온 단어이다. 대부분의 기독교 용어들이 처음에 천주교에서 나왔으니 천주교에서 온 단어라고 해서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평신도라는 용어는 독특한 천주교 사상이 담겨진 용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는 교회 중에서 일부는 성직자이고 성직자가..

낮은 자세로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낮은 자세로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바울 사도는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라'고 하나 되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남을 낫게 여기는 일이 실제로 쉽지 않다. 주님의 일을 할 때 상대방의 생각과 방법이 사실 자신의 것보다 못할 수도 있고, 실제로 또한 그러한 일이 허다하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겸손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낮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겸손이다 -박재선 목사의 ‘공동체의 조화’에서-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일입니다. 겸손하면 자연히 남을 높이고 존경하게 됩니다. 비록 그 일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졸렬한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높여 줄 때 거기서부터 대화가 통하고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도 있습니다. 상대를 높이고 자기를 낮추십시오.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입..

오늘 나는 누구를 의식하며 살고 있는가?

오늘 나는 누구를 의식하며 살고 있는가? 글쓴이/봉민근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다를 바가 없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는 잠 못 이루고 걱정을 하며 안색이 달라지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존재다. 코람데오를 말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교회에 출석을 못했을 경우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교회의 목회자나 성도가 어떻게 생각할까를 의식했다면 나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믿는다는 것 자체가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라고 하며 주님의 신부라고 대하여 준다고 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