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7 18

우정과 환대의 세상 열기 (고후 1:3-7)

(2022/09/04, 창조절 제1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 위로에도 동..

93. 듣는 자

[기도]​ ​ 아버지 하나님, 마음을 엽니다, 귀를 엽니다, 영을 엽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을 살아나게 하시며 듣는 마음을 주옵소서.​ ​ [말씀]​​​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5) ​ [묵상] ​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사람을 통하여, 사건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있는 성도가 영적으로 잠들지 않는 성도가 좋은 성도라고 합니다. 인간의 청각은 태어날 때, 가장 먼저 발달하며,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감각이라고 합니다. 단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작은 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고음도 들리지 않으며 저음..

‘광야의 선택’을 해야 할 때!(창13:1-13)

‘광야의 선택’을 해야 할 때!(창13:1-13)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아브람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라고 제안했을 때 만약 롯이 가나안을 선택했다면 아브람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래도 가나안을 선택했을까? 아니면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을까? 아브람의 생애를 볼 때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롯의 목동들과의 분쟁을 해결 할 다른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 만큼 아브람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확고한 사람이다. 주목 할 것은 롯의 선택이다. 그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풍요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선택은 본래부터 단 하나였다. 바로 ‘가나안’이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매 순간순간 마다 ‘광야의 선택’을 해야..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시편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16:11). 하나님께 영원한 생명이 있고, 그 영원한 생명 얻는 길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그 영원한 생명 안에 들어가면 그 안에는 이런 은혜의 선물이 풍성합니다. "충만한 기쁨",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를 때 감당해야 할 십자가도 있습니다. 환난도 있고, 핍박도 있고, 시험도 오고, 온갖 고난이 바로 앞에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기쁨, 영원한 즐거움에 비하면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기쁨의 맛, 영원한 즐거움의 맛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기쁨의 맛..

사랑하는 형제 자매의 고통과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가 되시며, 세상의 주권자 되심을 찬양합니다.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우리의 주 되심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허물과 죄와 연약함을 아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음도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때를 따라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며 주님의 뜻을 구할 수 있음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 시간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음도 주님의 은혜이오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에게 인자를 베푸시옵소서!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와 여기까지 함께하시며 주님을 기쁘시게하는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시며, 주님께서 귀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시게 하심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비밀의 경륜 (엡 3:1-13)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엡 3:1-13) 예수님의 십자가의 영광과 그 영광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강조한 바울은 이제 복음을 위하여 환난을 받은 자신 위하여 낙심하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환난은 영광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감옥에 갇힌 것에 대한 영광을 설명합니다. 바울은 앞서 기록한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계시의 비밀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자신이 기록한 것을 읽으면 바울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자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함은 계시를 깨달은대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방인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살면서 각종 고난을 감당하는 것은 계시로 비밀을 알았기..

메타버스 디지털 세계도 ‘현실’이다.

메타버스 디지털 세계도 ‘현실’이다. “이제 아날로그 지구, 물리적 지구에서만 머물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운 메타버스가 우리에게 다가왔고(중략), 물론,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물리적 지구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곁에는 물리적 지구와 함께 디지털 지구인 메타버스가 함께할 겁니다.” 김상균 저(著) 《메타버스》(플랜비디자인, 11-12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메타버스는 1992년에 미국의 소설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쉬》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로,‘가상 세계’를 지칭합니다. TTA정보통신 용어 사전에서는 ‘웹과 인터넷 등의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에 흡수된 형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를 어원적으로 보면 ‘현실을 넘어선다, 초월한다..

양 잃은 목자의 심정을 가지게 하옵소서! (2022년 9월 7일 수요일)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마태복음 18:12-13). 하루는 예수님이 질문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이 질문을 하신 후 예수님이 사람들의 대답을 들어보신 것은 아니지만 만약 사람들이 대답을 하게 했다면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아흔아홉 마리나 있는데 한 마리가 뭐 그리 안타깝겠습니까? 괜한 수고는 하지 않는 것이 낫지요.’ 보다 합리적인..

더러운 귀신 (2)(막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막 3:11) 간혹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은 귀신의 실체를 믿습니까?”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전이해가 필요합니다. 만약 귀신을 악한 기운이라고 말한다면 귀신의 작용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런 작용을 명백하게 목도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일일이 그걸 여기서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알만한 분들은 알고 있겠지요. 한 가지만 예를 든다면 충동적 소비심리입니다.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이런 현상은 분명히 사람들이 악한 기운에 사로잡힌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귀신을 어떤 질량을 확보하고 있는 ..

더러운 귀신 (1)(막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막 3:11) 오늘 본문보도에 따르면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을 보고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으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앞에서 등장한 병자들과 귀신의 활동은 긴밀히 연관됩니다. 성서시대 사람들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온갖 질병의 원인을 귀신의 활동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귀신을 실체로 이해했다는 걸 크게 이상한 게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그들의 지식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는 건 오히려 우리의 무식을 드러낼 뿐입니다. 성서시대의 사람들에 비해서 많은 걸 알고 있는 우리도 역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희한한 조화를 똑바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원시림의 생태적 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