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9 14

교만(驕慢)과 겸손(謙遜)

교만(驕慢)과 겸손(謙遜) 세상에 겸손보다 더 큰 덕은 없습니다. 교만은 내재된 많은 지식을 무용지물로 만들고,겸손은 적은 지식으로도 생을 풍요롭게 합니다. 많은 지식보다는 겸손이 낫고,겸손한 침묵보다는 행동이 낫습니다.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것은 교만의 사치요,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것은 겸손의 저축입니다. 오만한 마음에는 더 이상 채울 것이 없으나 겸손의 그릇은 늘 비어 있어서 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으로 내려갈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올라간 것입니다. 내려갈 수 있는 마음은 행복합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어느 학교에 하루는 한 부자가 찾아 왔습니다. 학교 마당 한구석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칠장이에게 교장실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칠장이는 교장실 위치를 친절히 가르..

할례는 육신이 아닌 마음에 하라!(창17:9-14, 23-27)

“그 집의 모든 남자와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27절)”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할례를 행했다. 놀라운 것은 돈 주고 사온 종과 이방인들까지 할례를 행했다. 이는 이방인도 언약의 후손이 되었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이처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신다.(롬10:12) 그래서 이방인인 우리도 하나님의 그 은혜를 입게 된 것이다. 구약에서 할례 의식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외적 표징이다. 하지만 ‘할례’의 신약적 의미는 ‘세례’를 의미하며, 영적 의미는 ‘거듭남의 표징’이다(골2:11). 그래서 할례는 ‘육신이 아닌 마음에 해야’ 한다(롬2:2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함께 기뻐할 수 있음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가 되시고 때를 주관하시고 계심이 신비입니다. 나를 지으신 그분이 나의 소망이 되시고 나의 선한 목자 되심이 신비입니다. 그 은혜를 누리며 나눌 수 있는 믿음의 여정이 되길 소망해 보는 오늘입니다. 함께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누리며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주님께서 놀라운 사랑과 섭리 가운데 사랑하는 목사님을 이 땅에 보내신 날이기에 더욱 감사한 날입니다. 주님의 기쁨이요 우리에게는 자랑입니다. 함께 기뻐할 수 있음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분명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소명의 길을 충성스럽게 가게하셨으니 이어지는 사역의 길에도 함께하시며 복음의 일꾼으로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 것이기에 감사하며 위하여 기도합니다. 큰사랑교회를 통하여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요한복음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한복음8:29) 하나님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히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사람이셨음에도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항상 순종하셨으므로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예수님은 아주 뛰어난 인물이셨기 때문에 완벽한 삶을 살아낸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눅4:1) 그렇게 살으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만을 하려고 ..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창 18:16-19)

(2022/09/18, 창조절 제3주, 기독교교육진흥주일) [그 사람들이 떠나려고 일어서서,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데로 갔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바래다 주려고, 함께 얼마쯤 걸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 이야기 속으로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기독교교육..

실패자 소리를 들어도

실패자 소리를 들어도 “20년 동안 평론가들로부터 ‘너저분한 잡동사니만 쓴다.’고 비판 받았던 작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다. 한 사업가는 무려 217번 투자를 거절당하고 218번째 투자자를 만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다. NBA에서 9.000번의 슛을 실패하고 3,000번의 경기에서 패배한 농구 선수가 있었다. 그는 전설이 된 마이클 조던이다. 남이 먹다 버린 빵을 주워 먹으며 연명하던 거지 청년은 마침내 자신이 꿈꾸던 놀이공원을 만들었다. 그가 바로 월트 디즈니다.” 김대현 저(著) 《소통 세일즈의 힘》 (라의눈, 14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실패한 ‘나’는, 나를 구성하는 100% 중 10%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90%는‘가능성’이라는..

인생을 변화시키는 말씀의 능력 (2022년 9월 19일 월요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 당신의 인생을 변화시킨 말씀이 있습니까? 시편 기자가 주의 말씀이 어두운 밤길 같은 인생길의 등이요 빛이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헌신적인 생애를 살았던 신앙 위인들의 인생을 밝혀준 감동적인 구절들이 알려져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방탕한 생활을 하던 중 로마서 13장 12-14절의 말씀을 읽은 아이들에게 감동받았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던 마르틴 루터도 로마서 1장 17절에 있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에서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5만 번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알려진 조지 뮐러는 시편 68편 ..

성령모독의 죄 (막 3: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막 3:30) 30절은 20절로부터 이어지는 “예수와 바알세불” 단락의 마지막 절입니다.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으신 예수님을 향해서 오히려 더러운 귀신을 들렸다고 비난하는 서기관들과 그 일행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는 곧 29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성령모독이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성령에 사로잡힌 분이셨던 예수님을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말한다는 것은 곧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그 일행들이 진지하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무조건 트집을 잡으려고 했는지 본문만으로는 우리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명색이 신학자들인데 신학적인 판단 없이 그런 비난을 퍼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다른..

용서받지 못하는 죄 (막 3: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막 3:29) 모든 죄가 용서받는다는 28절 말씀에 이어서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는 29절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 말씀을 간직하게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미 유대교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조상 아브라함의 계약을 파괴한 자, 죽은 사람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 토라가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부인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성서학자들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런 유대교적 유산을 보존하였다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중심을 의도적으로 허무는 행위를 용서받지 못하는 죄로 배격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도..

그리스도의 신앙과 진실의 길로 / 윤여성 목사(열린문교회, 본보 논설위원)

한국 교회 속에서 진실과 정직함을 추구하는 우리의 특수적 배경과 이념의 구별됨을 포기할 수 없다 합신총회 40주년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코로나로 인해 온 교단이 현장에 함께 모여 축하하는 자리는 어렵거니와 마음의 하나 됨 속에서 이런 지면으로 성의(聖意)를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믿는다. 성경에도 동일하게 다윗 성역 40년을 마칠 무렵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우는 과정에서 보인 것에 대해 무언가 배울 점이 없는지 생각했다. 지금 교단 상황이 그날의 교훈에 비춰 합당히 행해야 할 것은 없을까? 당시 위세 등등한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아비아달과 함께 모의, 왕 됨을 선언하였으나 솔로몬과 그를 돕는 자들이 동참하지 않았기에 결국은 이스라엘의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