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7 16

"목회성공에 목을 매던 있던 나를..."유기성 목사 / 선한목자교회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가 '성공이 아니라 주님이 목표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목회자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목회 성공과 실패 여부가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유 목사는 먼저 "오늘 호주 퍼스에서 목회자 예수동행 세미나가 열렸다. 참여한 목회자 부부의 수는 많지 않지만 퍼스 지역의 대부분의 교회 목회자 부부가 모였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우리의 목표가 목회 성공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시기를 기도했다"고 했다. 이어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 하셨다. 오직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삶이요 목회의 본질"이라며 "그런데 주님께서 나중에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요 15:4) 하셨다. 제자들은..

망고나무의 진짜 모습은?

망고나무의 진짜 모습은? 어느 나라에 네 아들을 둔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네 아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겨울, 둘째는 봄, 셋째는 여름, 넷째는 가을에 정원 뒤편에 있는 망고나무를 관찰하고 오너라 대신 자신의 계절의 망고나무만 봐야 한다." 네 아들은 왕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고 그렇게 1년이 지난 뒤 왕 앞에 모두 모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펴본 망고나무에 대해 한 사람씩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성장이 멈춘 듯 죽은 나무 같았습니다." "잎이 푸르고 싱그러웠습니다."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 피었습니다." "주렁주렁 열린 열매가 탐스럽게 열렸습니다." 서로의 설명을 듣자 왕자들은 자신이 본 망고나무와 너무 다른 이야기에 당황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네 아들에게 ..

성도의 거룩한 탄식 (로마서 7:15~25)

로마서 7장을 읽는 성도 중에 당황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기록할 통로가 될 정도로 성령님께 사로잡혀 있는 바울이 자신의 상태에 대한 고백을 했는데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현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었고, 죄에 대하여 죽음을 경험하고, 율법에 대해 죽음으로 율법의 구속에서 벗어났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이 여전히 죄 아래, 죄의 포로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네 구절을 보면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15절),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압니다”(18절),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19절),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내겠습니..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지적 장애를 가진 딸의 어머니의 믿음의 고백. ’우리 딸은 저희 가정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 믿음과 감사가 아름답습니다. 예수님만이 진정한 세상의 생명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을 찬양합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는 말씀. 그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보게 됩니다. 주님! 저의 연약한 믿음을 긍휼히 여기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요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요한복음12:27)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고통의 잔, 죽음의 잔 앞에서 마음이 괴로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으로 가지신 신적지위를 내려놓시고 자기를 비워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죽음의 공포, 고통의 공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잡은 자들이 예수님께 가한 폭력과 희롱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십자가 형벌은 예수님께도 괴로움이고, 벗어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해야 할 고통, 고난, 괴로움, 죽음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

어린 왕자가 만난 네 번째 별의 사람

어린 왕자가 만난 네 번째 별의 사람 “네 번째 별은 상인의 별이었어요. 그 사람은 너무 바빠서 어린 왕자가 왔는데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어요(중략). ‘셋 더하기 둘은 다섯,다섯 더하기 일곱은 열둘, 열둘에다 셋은 열다섯(중략). 난 이렇게 일이 많단다! 나는 중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난 말이야, 시시한 이야기 따위로 시간을 보내진 않아. 둘에 다섯은 일곱……’” 생텍쥐베리 저(著) 최복현 역(譯)《어린왕자》(책이 있는 마을, 56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어린 왕자가 만난 네 번째 별의 사람은 쌓아 놓기만 하는 상인이었습니다. 그는 덧셈의 기쁨만 알았습니다. 이 상인은 세 가지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풍뎅이의 요란한 소리, 신경통, 그리고 어린 왕자입니다. 쌓는 일 때문에 자기 몸 돌..

세상에서 격리되어야 하는가? (2022년 9월 17일 토요일)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린도전서 5:10). 한 형제는 매우 경건한 크리스천 직장인입니다. 그런데 술자리에 가서 시간 낭비하는 것이 싫어서 회식에 거의 참석하지 않습니다. 동료 팀원의 아이가 돌잔치를 할 때도 뒤풀이 자리는 가지 않고 동료의 결혼식 뒤풀이에도 슬그머니 빠집니다. 어김없이 술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형제는 그렇게 사는 것이 경건함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형제의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지만 세상과 격리되어서 살면 안 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오해한 문제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탄이 분쟁하면?(막 3: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막 3:26)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사탄을 인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시대의 아들”이니까 그 당시의 세계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생각과 판단에 오류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현실에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알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오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보통 인간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는 오해입니다. 전자는 신성만 강조하는 것이며, 후자는 인성만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일단 앎, 지식에 대한 선입견을 접어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삼각형의 내..

집이 분쟁하면?(막 3: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막 3:25) 예수님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제시한 두 번째 비유는 ‘집’입니다. 나라의 분쟁과 마찬가지로 집의 분쟁도 역시 그 집을 파괴합니다. 이 비유도 너무 간단하고 분명하니까 본문 자체에 대한 설명은 필요가 없겠군요. 집의 분쟁이라는 관점만 빌려서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옛날에는 할아버지로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가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지만 요즘은 대개 부모와 출가하지 않은 자식들로만 이루어진 핵가족으로 삽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요즘의 핵가족 체제를 못마땅해 하시겠지만 이런 대세를 꺾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가족이 해체된 것은 모두 인류가 생존해야 한다는 실존적 요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

에스겔서 27장: 두로에 대한 애가

해설: 두로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계속 됩니다. 주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로에 대한 애가를 부르라고 하십니다(1-2절). 에스겔은 두로를 아름다운 배에 비유합니다. 그 배는 세계 도처에서 구한 가장 귀한 자재로 만들어졌고(3-7절), 배의 선장과 선원과 군사들은 페니키아의 주요 성읍에서 차출된 사람들입니다(8-11절). 온 세상의 문물이 두로에 집중되고 있으며, 페니키아 전역의 인재들이 두로에 모여 들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에스겔은 두로와 교역을 했던 나라와 민족들을 열거합니다. 세계 만방에서 귀한 물건을 가져와서 그들이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어 간 곳이 두로였습니다(12-25절). 그런데 그 배가 바다 한 가운데서 동풍을 만나 파선할 것입니다. 여기서 ‘동풍’은 느부갓네살과 바빌로니아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