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360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8)(막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막15:37) 앞에서 언급한 본회퍼의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는 니체의 경구인 “신은 죽었다.”와 흡사합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본회퍼는 받아들이면서도 니체는 무신론자로 취급하고, 반기독교의 태두로 여깁니다. 제 생각에 그를 무조건 배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를 통해서 오히려 우리의 잘못이 드러났다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합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은 죽었다”, 또는 “무에 대한 의지”는 모든 근원을 허물어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허무를 통해서 훨씬 긍정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겁니다. 하나님 대신 초인을, 불멸의 영혼 대신 영원회귀를, 선과 참 대신 권력에의 의지를 생명 긍정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기성질서의 몰락을 촉진시키고 권력..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7)(막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막15:37) 이왕 말이 나왔으니 사신신학과 연관된 본회퍼의 비종교화신학을 보충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서 전통적인 유신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유대교의 유일신론을 넘어서 기독교 삼위일체론으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본회퍼의 신학을 비종교화라고 특징화하는 이유는 그의 신학적 단초가 기독교의 비종교화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일반적인 종교적 요청에 서 있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적 요청은 죽음, 외로움, 불안에 근거해서 초능력적인 존재를 구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그런 종교적 요청은 삶의 변두리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기독교는 이런 삶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속하는 문제들과 연결된다고 합니다. 그 중심은 정치, 경..

일인칭의 믿음 (막16:12-13) / 김영봉목사

해설: 마가복음의 첨가자는 누가복음 24장 13-35절의 내용을 두 절로 요약합니다. 누가는, 두 제자가 실망한 채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첨가자는 예수님이 “다른 모습으로”(12절) 나타나셨다고 표현합니다. 부활 후의 예수님의 몸은 인간의 경험적 언어로 묘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상당히 자세하게 이 이야기를 묘사하면서 두 제자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첨가자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는,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렸으나 그들이 여전히 “믿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완고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묵..

성공을 추구하는 3P(느헤미야 1:11, 2:4-5)

성공을 추구하는 3P (느헤미야 1:11, 2:4-5) 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2:5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느헤미야는 크리스천 직업인의 멋진 성공을 보여줍니다. 세속적 성공주의가 아닌 성경적 성공관을 배울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고 예루살렘 성벽이 ..

하나님은 다 아신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글쓴이/봉민근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다 보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나님을 두려운 줄 알고 살아야 한다.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가 분명하시다. 상 받을 자에게 상을 베푸시고 벌 받을 자에게 벌을 주신다.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생각과 행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좋은 게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믿는 자는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세상을 함부로 살면 안 된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다. 열심을 낸다고 다 옳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 억울하여 애통할 때에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사막의 무덤

사막의 무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걷고 있던 사막은 불덩어리같이 뜨거웠고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습니다. 언제 사막이 끝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먼 길이었습니다. 절망으로 가득 찬 아들이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죽음뿐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걸을 필요도 없이 그냥 이 자리에서 편하게 죽는 편이 낫겠어요." 아버지 역시 힘들었지만,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했습니다. "틀림없이 물을 마실 수 있는 마을이 나타날 거야. 아들아, 조금만 힘을 내렴."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겨우 힘을 내어 걸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들 앞에 무덤 하나를 발견한 것입니..

이웃 사랑과 영적 순결에 관한 규정 (신 22:1-12)

신 22:1-12 묵상입니다. 이웃 사랑과 영적 순결에 관한 규정입니다. 생명 존중과 언약 백성의 정체성 문제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하나님 백성은 믿음의 동역자요 믿음의 길동무인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곧 하나님의 창조 질서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삶이 예배가 되며 서로 섬겨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함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누림은 특권입니다. 믿음과 삶으로 하나님을 고백하게 하소서!

이준관 「넘어져 본 사람은」 / ‘고난은 훈련의 과정일 수가 있습니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이준관 시인의 시 「넘어져 본 사람은」을 하나님께 드리며 ‘고난은 훈련의 과정일 수가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넘어져 본 사람은 - 이준관 -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가슴에 푸른 멍이 들어 본 사람은 안다 땅에 박힌 돌부리 가슴에 박힌 돌부리를 붙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박힌 돌부리가 나를 일어서게 한다고/ 길을 걷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고 오르막길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길입니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땅과 가슴에 박힌 돌부리에 넘어져 푸른 멍이 들지만, 그 돌부리를 붙잡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시냇물도 돌부리가 있어야 부딪히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어느 마을..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시105:39-42)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으며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 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시편105:39-42) 하나님은 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치 빚을 지신 분처럼 행하셨고, 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착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가볍게 여기시거나, 잊으시거나, 파기하시거나, 감당하지 못하여 포기하시거나 그런 하나님이 아니심을 성경에서 우리는 봅니다.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 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