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4 12

이준관 「넘어져 본 사람은」 / ‘고난은 훈련의 과정일 수가 있습니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이준관 시인의 시 「넘어져 본 사람은」을 하나님께 드리며 ‘고난은 훈련의 과정일 수가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넘어져 본 사람은 - 이준관 -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가슴에 푸른 멍이 들어 본 사람은 안다 땅에 박힌 돌부리 가슴에 박힌 돌부리를 붙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박힌 돌부리가 나를 일어서게 한다고/ 길을 걷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고 오르막길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길입니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땅과 가슴에 박힌 돌부리에 넘어져 푸른 멍이 들지만, 그 돌부리를 붙잡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시냇물도 돌부리가 있어야 부딪히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어느 마을..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시105:39-42)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으며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 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시편105:39-42) 하나님은 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치 빚을 지신 분처럼 행하셨고, 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착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가볍게 여기시거나, 잊으시거나, 파기하시거나, 감당하지 못하여 포기하시거나 그런 하나님이 아니심을 성경에서 우리는 봅니다.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 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6)(막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막15:37) 사신신학은 다른 두 가지 신학과 연결됩니다. 하나는 하비 콕스의 세속화신학이고 다른 하나는 본회퍼의 비종교화신학입니다. 세속화신학은 기본적으로 성속이원론의 철폐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역에, 사람은 세속적 영역에 속한다고 보는 입장을 완전히 뒤집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세속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겁니다. 콕스는 참된 신앙을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honest to God) 서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비 콕스의 세속화신학보다는 본회퍼의 비종교화신학이 훨씬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콕스의 신학은 사회 분석적 성격이 강해서 잠시 부각되고 말았지만 본회퍼의 신학은 신학적 성격이 강해서 지금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5)(막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막15:37) 복음서 기자는 “예수께서 ... 숨지시니라.”고 담담하게 진술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즉 메시아가 죽었다는 겁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죽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죽을 수 있을까요?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해서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죽음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서는 그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1960년대에 사신(死神)신학이 주로 북미 신학계를 중심으로 크게 번졌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하나님은 오늘과 같은 세속시대에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무소불위하고 전지전능한 존재입니다. 그런 하나님 표상을 현대인들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으로는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4)(막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막15:37) 마가복음이 15:33-37절에서 전하는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은 좀 허탈해 보입니다. 주님은 단지 여섯 시간만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건장한 남자는 보통 일주일 동안 달려있다고 합니다. 드물게는 보름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그것자체로는 별로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실질적인 위협은 못이 박힌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피입니다. 체질에 따라서 피가 빨리 쏟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멎는 사람도 있습니다. 십자가 처형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죽음의 과정이 너무 오래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섯 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는 건 아주 비정상적인 경우입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던 그 순간의 예수님은 심신이 아주 허약해지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예루..

부활 신앙의 기초 (막16:9-11)

해설: 9절부터 11절의 내용은 마태복음 28장 9-10절과 요한복음 20장 11-18절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 구절을 첨가한 사람은, 빈무덤 안에서 보고 들은 것으로 인해 무서워 떨고 있던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찾아가 그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독자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세 명의 여인 모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만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마가의 첨가자는 요한복음을 따라서 막달라 마리아에게만 초점을 맞춥니다(9절). 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부활 이야기들을 비교해 보면 일치하지 않는 점들이 많이 나옵니다. 빈무덤에 찾아간 여인의 수도 다르고, 무덤에 있던 사람의 수도 다릅니다. ..

세 가지 사랑으로 기쁨을 누리는 삶(마태복음 22:35-40)

세 가지 사랑으로 기쁨을 누리는 삶 (마태복음 22:35-40)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살아가면 행복할까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했던 한 율법사에게 예수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크게 보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두 가지 계명이고 이웃 사랑에 포함된 자기 사랑까지 합하면 세 가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가증한 죄의 전염성 (신 20:1-20)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새 나라 새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나안은 이미 여러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발굴된 고고학 유물을 보면 가나안 지역의 우상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지만 결코 쉬운 땅이 아닙니다. 이 땅에 들어가서 새 나라를 세우는 일은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선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군인을 모집합니다. 그리고 군인들에게 용기를 가질 것을 명령합니다.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 친히 함께하시니 걱정하지 말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첫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약혼하고 결혼하지 못한 자,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는 전쟁에..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글쓴이/봉민근 속 빈 강정이란 말이 있다. 말씀 없는 삶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믿음의 사람은 말씀으로 산다. 말씀이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하나님을 개념으로만 믿는 사람이 있다. 추상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 천국과 지옥은 나와 관계 없는 것처럼 자신의 의식 속에서만 아련하게 보일 뿐인 사람이 있다.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내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지만 내게는 닥쳐오지 않을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일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라 하나 그것은 내가 아닌 남의 일이라 생각을 하고 사느라 준비가 없다. 그러나 죽음도 심판도 반드시 내게 닥쳐온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처럼 천국과 지옥도 반드시 존재한다..

나는 친구에게 사과를 준다

나는 친구에게 사과를 준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나는 친구에게 사과를 준다'의 미래형은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께 '나는 친구에게 바나나를 받는다'라며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의아해하며, 학생에게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전에, 친구에게 사과를 줬더니 다음날 친구가 저에게 바나나를 줬어요." '나는 ~ 준다'의 미래형으로 '나는 ~ 받는다'는 문법적으로 틀린 답이지만 삶의 이치로 보면 맞는 답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이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베풀면 그것이 자신의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세상에 전한 선행은 이 세상을 돌고 돌아 언젠가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 오늘의 명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