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12

정탐꾼을 구해 준 라합(수2:1-7)

정탐꾼을 구해 준 라합(수2:1-7) 본문은 여리고 성을 정탐하기 위해 파송한 두 정탐꾼들을 그 성의 기생 라합이 위기에서 구해주는 장면이다. 이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라합의 행위는 반민적행위로 지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라합은 하나님께 대한 정확한 지식과 믿음을 소유한 여인이었다. 다시 말해서 라합은 멸망할 도시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았고 그것을 실천했던 여인이다. 그 결과 라합은 이방 여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마1:5) 영광과 축복을 받았다.

부족함 없는 삶, 가능한가?(시 23:1-6)

부활절 4주, 2024년 4월 21일 히브리어 성경 시 23편은 ‘다윗의 시편’이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우리말 성경도 라는 표제를 달았습니다. 시 23편을 노랫말로 하는 찬양곡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래는 나운영 작곡의 ‘시편 23편’입니다. 이 시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 노랫말이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은혜롭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로 끝납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생을 산다면 대만족이겠지만 실제로 이렇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부족함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많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한평생..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잠언14: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잠언14:23) 사람의 온 몸으로 수고해서 얻은 것을 다 까먹는 것이 입이라는 말씀입니다. 언력이 능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하는 능력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지휘하고, 이끌어가고, 가르치고, 누리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말이 그 만큼 어렵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유명인사나, 정치가들이나, 리더의 위치에 선 사람들에게만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하는 방법에 비언어적 소통도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말이나, 글로 소통을 하기 때문에 말은 절대적입니다. 우리의 입술이 우리 자신을 궁핍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고, 인생을 곤두박질 치게도 할 수도 있는 위력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겠습니다. 우리..

그는 살아나셨다(25)(막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부활은 생명의 질적인 변화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에 관해서도 많은 질문이 가능합니다. 부활의 세계에서는 지금 이 세상에서 경험했던 생명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걸까요? 부활 이전과 부활 이후에 어떤 연속성이 있을까요, 전혀 없을까요? 더 구체적으로, 부활의 세계에서도 역시 가족을 알아 볼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인격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요? 도대체 질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어디서 어디까지의 변화를 말하는 걸까요? 모든 것이 완전히 변한다면 지금의 ‘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저는 위의 질문들에 대해서 대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모두 ..

그는 살아나셨다(24)(막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저는 앞서 몇 번에 걸쳐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은 예수 부활이 불확실하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이 세상 경험으로는 그 존재유비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부활은 질적인 변화입니다. 알의 세계와 새의 세계가 무관하지는 않지만 질적으로 다르듯이 이 세상 생명과 부활 생명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 이에 관해서 짧게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부활을 부정하던 사두개인들에게 주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그는 살아나셨다(23)(막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부활에 대한 보도가 바울 서신과 복음서 사이에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앞에서의 글에서 어느 정도 암시되었을 겁니다. 부활에 대한 복음서의 보도는 산만합니다. 빈 무덤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부활 장면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전혀 없습니다. 바울의 보도는 주로 케리그마의 차원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인류 구원의 근거라는 교리적 해명입니다. 부활을 가장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고린도전서 15장도 사실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신학적 관점입니다. 복음서와 서신을 막론하고 부활에 대한 성서의 모든 보도는 부활한 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아닙니다. 빈 무덤 전승에서 부..

당신의 일을 위해 기도하십니까?(요5:16-18)

당신의 일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요한복음 5:16-18)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일하는 크리스천들 중에도 일은 신앙과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과 신앙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일과 기도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일의 의미를 바로 알고 일과 기도를 잘 조화시킨 대표적 인물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준 일로 인해 유대인의 박해를 받으실 ..

미완으로 남겨 두신 까닭은?

미완으로 남겨 두신 까닭은? 글쓴이/봉민근 인간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을 아는 자는 겸손할 수가 있다. 부족을 알고 무능함을 아는 것이 자신을 똑바로 보는 것이다. 인간은 완전한 자가 아니다. 타락한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은 전능자가 아니요 무능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서 누리며 살고 있지만 저절로 내게 주어지는 것은 없다. 넘치도록 주시지만 그것이 은혜인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여기며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다.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의 옷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걸레가 되어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세상을 바라보고 살면 믿음은 무너지게 되어 있..

푸른 초원의 소 떼

푸른 초원의 소 떼 한 초등학교의 미술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목장 풍경을 자유롭게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하나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한참이 지난 후 선생님은 아이들의 그림을 하나씩 보았습니다. 푸른 초원, 울타리 등 다양한 모습을 도화지 안에 그려 넣는 아이들을 향해 칭찬의 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의 그림은 민둥 언덕만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선생님은 아이에게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어떤 그림을 그린 거니?" "풀을 뜯는 소의 그림이요." 아이의 그림에서 풀과 소를 찾을 수 없었기에 선생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풀과 소가 어디 있니?" "선생님도 참~ 풀은 소가 다 먹었잖아요. 그리고 소는 풀을 다 먹었는데 여기 있겠어요?" 산은 뾰족한 세모, 하늘은 연한 파란색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