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7 9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시125: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시편125:1-2)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도 요동치고, 우리의 마음도 끊임없이 요동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고, 요동치지 않으려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다가오는 위협과 위험과 시련에서 보호받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의 품에 거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흔들리지 않게 굳게 붙잡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와 그 안에 거하는 자를 튼튼하고, 높은 성곽으로 둘러 보호함과 같이 하나님의 팔을 둘러 보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온산에 선 것처럼..

여성 제자들(3)(막15: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막15:40) 위 구절에 따르면 세 명의 여성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해서 몇 명의 여자들이 십자가 바로 아래에 있었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여자들이 십자가를 멀리서 바라보았다는 마가복음의 진술이 옳은가요, 아니면 십자가 바로 밑에 있었다는 요한복음의 진술이 옳은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복음서 기자들이 각각 다른 전승을 알고 있었고, 또한 그들이 처한 자리가 달랐기에 이런 차이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차이는 복음서를 읽는데 별로 중요한 문제도..

여성 제자들(2)(막15: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막15:40) 위 구절에서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가 나옵니다. 요세는 요셉의 축소형 이름이라고 합니다. 막 6:3절에 예수님의 동생들 이름이 나오는데,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입니다. 그렇다면 위 구절의 야고보와 요세는 바로 예수님의 동생들일까요? 학자들에 따라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지금 그걸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장 형태를 본다면 그들이 예수님의 동생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마리아가 바로 그들의 어머니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어머니이기도 하니까 굳이 형제들 이름을 거론할 이유는 없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네 명의 여자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

여성 제자들(1)(막15: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막15:40) 어제 묵상에서 십자가 사건 이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최초로 고백한 이가 백부장이었다는 사실을 짚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가까운 사람도 아닌, 더구나 유대인도 아닌 사람이 십자가 사건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는 이 사실은 믿음의 본질을 웅변적으로 대변합니다. 믿음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백부장 이야기에 이어서 여성들이 나옵니다. 이 여성들도 나사렛 예수 공동체에서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바로 그 장..

우리가 받은 명령(막16:19-20) / 김영봉목사

해설: 19절은 사도행전 1장 9-11절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다”는 말은 육신을 입고 1차원 시간과 3차원 공간 안으로 들어오셨던 하나님의 아들께서 다시 영원의 차원으로 돌아가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하늘”(heaven)은 창공(sky)를 가리키는 사물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을 가리키는 비유 언어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는 말은 성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 들어가셨다는 뜻입니다. “오른쪽”은 가장 가까운 쪽을 의미합니다. 성육신의 사명을 완수하신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그 상태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20절은 첨가자가 쓴 결론입니다. 제자들과 신도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땅끝을 향해 퍼져 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할지라(신 22:13-30)

이스라엘이 가진 구별된 시민법 가운데 하나가 혼전 성의 순결성과 성 범죄에 대한 규례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리는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고대 근동 문화에 비추어 보아도 고리타분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의 문화를 분별하여 수용합니다. 악한 것은 제하여 수용합니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도 동일합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순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누명을 쒸우는 불의한 방법으로 결혼을 무효화 시키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남자의 악한 행위는 반드시 처벌받습니다. 그러나 약혼한 여자의 순결성이 없다면 창기와 같은 행위로 보고 돌로 쳐 죽이는 일을 합니다. 간음한 여인에 대한 징계입니다. 결혼 후에 벌어지는 불륜행위도 돌로 쳐서 죽여야 합니다. ..

하나님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

하나님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 글쓴이/봉민근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내 주장, 내 뜻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 기도다. 기도는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시간이다 이것을 해주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기도에 조건을 걸어서는 안 된다. 조건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내가 거래하는 거래처가 아니다. 기도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순종을 다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신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담이 하는 일을 보시고 계시며 나의 미래도 보고 계신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는 예배다..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는 거룩이 생명입니다.(신 23:1-18)

신 23:1-18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는 거룩이 생명입니다. 예배 공동체 또한 정결한 삶이 기본입니다. 율법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합니다. 부정을 차단하되 관용으로 열린 공동체가 되며, 삶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거룩한 자가 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삶의 진영이 거룩하고 말씀으로 무장되며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길이 생명의 길이요 승리의 길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백성 삼으심은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의 기준되게 하소서! 겸손히 지혜와 믿음을 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