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0 12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사람들은 행운을 꿈꾸며 금광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광산을 파헤치던 한 부류의 사람들은 천신만고 끝에 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삽과 곡괭이는 닳고, 먹을 것도 떨어져서 다시 마을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금광을 발견했던 사람들은 기쁨도 잠시, 금광의 존재를 들킬 것을 우려해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광산으로 돌아갈 때,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곡괭이를 들고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금을 발견했나 보군요! 저희도 그곳으로 데려가 주면 안 되겠소?" 금광을 발견한 사람 중에 그 누구도 금광에 관해서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기에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니, 금이라니요? 무엇을 보고 하시는 말..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잠언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잠언13:13)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적인 권위로 삼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먼저 말씀을 멸시하지 않고, 말씀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의 중심으로 받고, 그 말씀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말씀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합니다. 오늘은 국회의원 선거일입니다. 국회의원이 나라와 국민과 심지어 이 나라의 각 개인의 행복과 평안에 영향을 끼칩니다. 믿지 않는 자라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정치적인 언어로 멸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멸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의 중심에서 두려..

형제의 고통을 주님만이 아십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권자 되심을 찬양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심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함은 오직 주님의 사랑임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도 성령님께서 사랑으로 강권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긍휼 하심에 의지하여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오니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모두는 그 은총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입니다. 주님께서 놀라운 사랑과 섭리 가운데 그를 택하여 부르시어 백성 삼으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시며 믿음의 일꾼으로 쓰임받게 하시고 선한 일에 열심하는 귀한 형제입니다.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합니다. 믿음의 여정 가운데 육신의 연약함으로 ..

도봉산에도 봄기운이 뚜렷하네요.

화창한 봄날이네요. 참으로 아름다운 날입니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결은 부드럽습니다. 고향의 들녘이 떠오르고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약속을 미루다가 더 미룰 수 없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봉산에도 봄기운이 뚜렷하네요. 수락산도 그러하고 불암산도 그러합니다. 가다 보면 북한산 풍경이 보이겠네요. 한결같은 모습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철 따라 변하는 신비가 올해는 더 깊게 느껴집니다. 봄을 함께 누렸던 방형이 곁에 없기 때문일 겁니다. 윤중로 벚꽃길을 함께 걷곤 했는데.... 전에 가슴이 답답하다 하셨는데... 요즘은 어떠하신가요? 오래전에 그러한 증상이 저에게도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미처 의사와 상담하거나 정밀검사를 받아보지 못하다가 그러한 경험을 한 어느 작가의 글을 읽고서야 건강검진을 받을 ..

죄 많은 여인과 예수님(눅7:36-50) / 정병선목사

행실이 좋지 않은 한 여인이 예수님에게 값진 향유를 부은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다른 세 기자들과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를 뺀 나머지 기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 짓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죄 용서의 문제로 연결 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누가가 이 이야기를 잘못 전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가 잘못 전했다기보다는 다른 관점에서, 그러니까 죽음의 맥락에서 해석하지 않고 죄용서의 맥락에서 해석한 것이라고 보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의 사건, 하나의 이야기 속에는 하나의 뜻만 들어있다’는 생각이 아주..

무덤에 묻히심(2)(막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막15:43) 이 장면에서 아리마대 요셉이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석굴로 된 가족 묘지에 안장한 인물입니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가족이나 제자들이 그 일을 했어야 합니다. 저간의 사정이 어떻게 된 것인지 복음서 기자들이 아무런 설명도 없으니 우리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이 이야기가 네 복음서에 똑같이 들어 있는 걸 보면 초기 기독교에 잘 알려진 전승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아리마대 요셉의 신분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그는 존경받는 공회원입니다.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산헤드린 의원이거나 아니면 지역 재판소의..

무덤에 묻히심(1)(막15: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 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막15:42) 마가복음 기자가 지적하고 있는 ‘이 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한 날입니다. 이 날을 ‘준비일’, 즉 안식일 전 날이었다고 적시합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이고, 유대인들에게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 아니라 저녁이니까 이 날은 금요일을 가리킵니다. 저녁이 되기 이전까지를 말합니다. 복음서 기자가 굳이 이렇게 ‘이 날’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이유는 예수의 죽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는 예수님의 죽음을 용납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어떻게 인간처럼 죽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의 본성은 불사(不死)와 불멸(不滅)입니다. 예수님이 신이..

여성 제자들(10)(막15: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막15:41) 이런 궁금증이 듭니다. 사람은 왜 여자와 남자일까요? 사람만 그런 게 아닙니다. 모든 동물은 암수로 되어 있습니다. 식물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생식의 기본 원리입니다. 사람도 이런 원리에 따라서 여자와 남자로 살아가는 거겠지요. 사람은 여자와 남자라는 특성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대로 유지할까요? 그건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상식으로 본다면 그 특성이 결국은 없어진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여자와 남자는 후손 번식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후손 번식이 여자와 남자의 성적인 결합 없이 가능한 때가 온다면 결국 이런 특징..

파괴자가 아니라 관리자로!(창1:26-31)

해설: 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인간의 창조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릅니다. 26절은 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 “우리”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현상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매우 큰 것을 표현할 때 복수형 명사를 사용하는 히브리적 어법을 따른 것이라는 제안입니다. 예컨대, 히브리인들은 “바다”를 “물들”이라고 표현하고 “하늘”을 “하늘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어법으로 본다면, 하나님에게 “나”라는 대명사보다는 “우리”라는 대명사가 더 어울립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하신 말씀이기 떄문에 “우리”라고 했다고 해석합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

참된 평화는 어디에 있나?

참된 평화는 어디에 있나? 글쓴이/봉민근 인간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산다.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늘 불행 속에 사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불행한 인생이다. 세상의 근심걱정은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 만들어진다. 하나님을 나의 보호자로 믿고 사는 자는 근심하며 살아갈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니 늘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지 못하니 모든 일을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있는 자녀는 오늘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부모에게 요구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행복도 승리도 내가 노력한다고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판단하고 허락하셔야 이루어진다. 오늘 내가 이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