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파괴자가 아니라 관리자로!(창1:26-31)

새벽지기1 2024. 4. 10. 04:42

해설:

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인간의 창조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릅니다. 26절은 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 “우리”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현상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매우 큰 것을 표현할 때 복수형 명사를 사용하는 히브리적 어법을 따른 것이라는 제안입니다. 예컨대, 히브리인들은 “바다”를 “물들”이라고 표현하고 “하늘”을 “하늘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어법으로 본다면, 하나님에게 “나”라는 대명사보다는 “우리”라는 대명사가 더 어울립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하신 말씀이기 떄문에 “우리”라고 했다고 해석합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에 기독교인들은 이 표현에서 ‘단일체 신’이 아니라 ‘삼위일체 신’을 읽어 왔습니다. 요한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진행되면서 단계적으로 드러난 계시의 결론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라는 표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표현은 26절과 27절에 거듭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표현의 의미에 대해서도 많은 제안을 해 왔습니다. 그 논의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의 결론을 얻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지어졌다는 의미입니다. 태양빛의 속성을 따라 전구빛을 만든 것처럼, 하나님의 속성(사랑, 정의, 진실, 거룩, 의 등)이 인간에게도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지음 받았다는 뜻입니다. 로마 황제가 어느 나라를 정복하면 그곳에 자신의 동상을 세워 둡니다. 그것은 그 땅이 자신의 통치 영역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은 로마 황제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깃발을 들고 부임합니다. 자신이 황제를 위해 대신 통치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 땅을 다스리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27절)하십니다. 남자와 여자의 창조 과정에 대해서는 2장에서 자세히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28절)는 말씀으로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분은 또한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명체를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유린과 착취를 허락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의 뜻을 따라 생명체를 돌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고 당신의 피조물을 인간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정원에 관리자로 위임 받은 것입니다.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 채소와 과일들을 먹거리로 삼도록 허락하십니다(29-30절). 인간의 죄가 시작되기 전에는 음식을 얻기 위해 다른 동물의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표현이 여섯 번 나옵니다(4절, 10절, 12절, 18절, 21절, 25절). 그리고 여섯째 날, 인간을 창조하고 당신의 피조 세계를 위임하고 나서는 “보시기에 참 좋았다”(31절)고 말씀하십니다. “좋다”로 해석된 히브리어 ‘토브’는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이렇듯 모든 것이 제 자리에서 자신의 기능을 다하며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태초의 평화요 행복이었습니다.

 

묵상: 

지구 환경의 오염과 훼손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미래 학자들은, 이대로 방치된다면 2050년에는 지구 환경은 인간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어 놓습니다. 그것은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지구 환경을 되돌릴 만한 골든 타임이 이미 지났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제 인류에게 남은 선택지는 파국의 날을 조금 늦추는 것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수년 전만 해도 그런 전망들이 하나의 이론에 그쳤는데, 이제는 그 파국의 징조들을 자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지구촌에 사는 모든 이들이 마음을 합하여 중대한 변화를 도모해야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까닭에 괄목할만한 국제적 움직임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훼손되어 가는 지구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의 후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면서 당신의 성품을 부여하셨습니다. 그 성품을 따라 살았다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 피조 세계를 아름답게 관리하고 가꾸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하나님에게 반역하기를 선택했고, 그로 인해 인간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깨어졌습니다. 그분에게서 부여받은 귀한 속성들–사랑, 진리, 정의, 의, 거룩, 자비 등–이 일부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의롭고 선하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씁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해롭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모든 속성을 감추고 죄성을 따릅니다. 죄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이기적으로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죄된 인류는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지위를 섬김의 기회로 여기지 않고 착취의 능력으로 여겼습니다. 죄로 인해 자신의 식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짐승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 죄성의 한 예입니다. 

 

바울 사도가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롬 8:22)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원의 관리자’로 위임 받은 인류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정원의 파괴자’가 되었기에, 모든 피조물이 인류의 온전한 구원을 갈망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생명이 온전히 해방될 것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미래를 믿고 갈망한다면, 오늘 우리 주변에 있는 생명들을 사랑으로 가꾸면서 지구 환경이 더 망가지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