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2장 1절부터 3절까지는 1장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엿새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레 되는 날에 쉬셨습니다(1-2절). 여기서 “쉬셨다” 혹은 “모든 일에서 손을 떼셨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완성되었다”는 말은 “끝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자신의 계획대로 땅을 일구고 온갖 나무를 심고 씨앗을 뿌리는 작업을 마친 것과 같은 완성을 의미합니다. 이제 온 우주와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도록 준비가 완료된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3절)고 말합니다. 이미 창조된 것들을 축복하고 감사하고 즐거워 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하십니다(출 20:8-11).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서로 축복하고 나누며 즐거워 하는 날입니다.
2장 4절부터 25절까지의 내용은 앞의 내용과 여러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두번째 창조 이야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저자의 손에서 두 본문은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도록 통합 되었습니다. 1장부터 2장 3절까지는 창조 이야기를 거시적 관점에서 그린 것이고, 2장 4절부터 25절까지는 인간을 중심으로 카메라의 앵글을 좁혀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이 세상은 관리자가 없는 정원처럼 황량한 상태에 있었습니다(5-6절).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십니다”(7절). 히브리어로 “사람”은 “아담”이고 “흙”은 “아다마”입니다. 인간 존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흙덩어리가 “생명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기운” 즉 하나님의 영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신 영에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일구시고 아담을 그곳에 두셨습니다(8절). 하나님은 그 동산을 아무 부족함 없는 낙원으로 조성하시고 아담에게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수 많은 과실 나무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9절). 에덴 동산에는 강 하나가 흘렀는데, 그 강은 에덴을 흘러나와 네 지류로 갈라져 흘렀습니다(10-14절).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 동산의 관리를 맡기시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 먹지 말라는 조건 하에서 모든 자유를 허락하십니다(15-17절). 하나님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17절)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그것은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넘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묵상:
어거스틴에게 어떤 청년이 찾아와서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질문을 받고 어거스틴은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자네 같은 사람을 위해 지옥을 짓고 계셨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창조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싶은 문제를 캐묻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창세기의 이야기는 하나님에 대해, 피조 세계에 대해, 인간 존재에 대해 저자가 전하고 싶어 했던 것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을 캐묻지 말고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특별한 지위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특별한 방식으로 지으십니다. 다른 생명들은 말씀으로 명령하여 존재하게 하시는데, 사람은 직접 공들여 지으십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의미합니다. 또한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 하나님의 영을 부여 받은 유일한 존재입니다. 다른 생명체들은 전적으로 땅에 속해 있지만, 인간은 땅에 속해 있으나 동시에 하나님께 속해 있는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의 창조 세계를 맡아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하셨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진 것입니다.
일찍이 다윗은 인간의 무한한 무가치성에 눈 뜨는 동시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특별한 지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시편 8편).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를 읽으며 눈 떠야 할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무한히 작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하찮은 존재에게 하나님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 가치를 발견하고 그런 존재로 회복될 때까지 인간은 아직 온전히 창조되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신 형상은 깨어지고 존재의 근거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존재의 근거이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고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길을 열어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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