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8)(막15:37)

새벽지기1 2024. 4. 5. 05:22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막15:37)

 

앞에서 언급한 본회퍼의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는 니체의 경구인 “신은 죽었다.”와 흡사합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본회퍼는 받아들이면서도 니체는 무신론자로 취급하고, 반기독교의 태두로 여깁니다. 제 생각에 그를 무조건 배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를 통해서 오히려 우리의 잘못이 드러났다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합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은 죽었다”, 또는 “무에 대한 의지”는 모든 근원을 허물어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허무를 통해서 훨씬 긍정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겁니다. 하나님 대신 초인을, 불멸의 영혼 대신 영원회귀를, 선과 참 대신 권력에의 의지를 생명 긍정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기성질서의 몰락을 촉진시키고 권력의지를 통해서 그것을 극복하는 적극적인 계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의 ‘허무’는 양가(兩價)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의미로서 기독교의 도덕주의적 체계를 해체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의미로서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설명을 들어보십시오.

 

“니체가 무신론으로 돌아섰다는 것은 그가 프로테스탄트의 참회적 경향을 혐오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데, 이 사실을 직시해야만 니체가 자신의 지적인 의심의 날카로움을 단 한 번도 근대 무신론을 증명하는 작업이나 또는 그 사회적 조건들을 향해서 시도하지 않았다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이해될 것이다. 그가 그렇게 자랑해마지 않았던 정직의 덕은 그에게 사실상 매우 일방적으로, 또한 부분적으로 추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앞서 암시되었던 것처럼 설명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니체가 기독교를 비방했던 그 거울이 비록 깨진 것이라 해도 감사해야만 한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종교적 경건성이 그릇된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충고에 대해서 눈감으면 안 된다.”(신학과 철학,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