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일인칭의 믿음 (막16:12-13)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4. 5. 05:14

해설:

마가복음의 첨가자는 누가복음 24장 13-35절의 내용을 두 절로 요약합니다. 누가는, 두 제자가 실망한 채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첨가자는 예수님이 “다른 모습으로”(12절) 나타나셨다고 표현합니다. 부활 후의 예수님의 몸은 인간의 경험적 언어로 묘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상당히 자세하게 이 이야기를 묘사하면서 두 제자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첨가자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는,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렸으나 그들이 여전히 “믿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완고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묵상:

첨가자가, 제자들이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 까닭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첨가한 사람은 초대 교회의 지도자로서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그는 사람들로부터 완고한 불신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 어떤 논리로도, 그 어떤 간증으로 불신의 마음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은 일인칭이다”라는 사실을 뼈져리게 경험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고 들은 것으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첨가자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완고한 불신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록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랬다면 보통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첨가자는 그 기록을 읽는 독자들이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갈망하게 되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나에게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야기가 있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는 삼인칭 믿음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만났습니다”라는 일인칭의 고백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다면, 입 다물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길에서 주님을 만난 두 제자처럼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알리고 싶은 열정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마음을 열고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문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우리의 마음이 굳어 있어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때로는 미풍으로, 때로는 돌풍으로, 때로는 속삭이는 음성으로, 때로는 사자후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