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예수 다시 사셨다!(2)(막16:1-8)

새벽지기1 2024. 4. 3. 05:19

묵상 2:

신약성서 27권의 원본들 즉 원저자가 쓴 최초의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고 필사본들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학자들이 필사본들을 연구하고 비교하여 원본에 가깝도록 복구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신뢰성이 깎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본문은 어림 잡아 98% 이상 원문과 일치합니다. 나머지 2% 정도의 본문들이 확정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결말 부분이 2%에 속하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고대의 믿을 만한 사본들은 대부분 16장 8절에서 끝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9절 이하의 본문이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고 봅니다. 마가복음이 쓰여지고 필사되어 읽히는 중에 결말 부분이 미흡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복음서들을 참고하여 빈무덤 이후의 이야기들을 마가의 문체로 요약해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세 종류의 첨가 부분이 발견되었습니다. 

 

16장 8절이 결말로서 미흡한 이유는 여인들이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8절)는 서술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뭔가 완결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1) 마가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썼는데 전해지는 중에 마지막 장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유실가설), 2) 8절까지 쓰고는 마가가 체포되어 더 이상 쓸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절필가설). 하지만 요즈음에는 마가가 미완의 결론을 의도한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그렇다면 마가는 왜 이렇게 ‘결론 같지 않은 결론’을 낸 것일까요? 마가복음을 처음 받아 읽은 독자들은 네로의 박해 아래에서 두려워 떨고 있던 로마 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가 이미 순교를 당한 이후였을 것입니다. 로마 교회 교인들은 자신들에게도 박해와 순교의 피바람이 닥치지 않을까 두려워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여인들과 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지금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곧 마음을 정리하고 제자들에게 찾아가 그 소식을 전합니다. 그로 인해 복음은 퍼져 나갔고 로마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마가는 박해와 순교의 피바람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던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여인들이 두려워 떤 것으로 결론 지었을 것입니다. 이해 못할 박해의 불길 앞에서 두려워 떠는 것은 당연하다고 위로하는 한편, 여인들처럼 그들도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라고 위로를 준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순교에의 초대”라는 별명으로 불려져 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면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움 받을 것이 두렵고, 어떤 사람은 무시 당할 것이 두렵고, 어떤 사람은 배척 받을 것이 두렵습니다. 기독교 박해 국가에서는 실제로 순교를 두려워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반응 앞에서 움츠러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로 부활의 소식을 믿는다면, 결국 용기를 내어 입을 열어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음 자체에 생명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