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본문은 마태복음 28장 16-20절, 누가복음 24장 36-49절, 요한복음 20장 19-23절 그리고 사도행전 1장 6-8절 등을 참고하여 쓰였습니다. 14절은 첨가자가 앞의 이야기와 연결시키기 위해 써 넣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두 제자의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첨가자는 부활의 복음을 믿지 못하고 있는 독자들을 생각하고 이렇게 쓴 것입니다.
그런 다음, 부활하신 주님은 온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15절). 부활하신 주님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는 사실은 세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경은 “만민에게”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 ‘크티시스’는 <새한글성경>처럼 “모든 창조물에게”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롬 8:18-25).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으면 세례를 통해 그 믿음을 확증합니다(16절). 초대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받는 세례는 그 사람의 믿음이 진실되다는 증거였습니다. “구원”은 죄에 대한 영원한 형벌을 면제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그분과 함께 의에 대해 살아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는 말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대신 담당하신 형벌이 우리와 상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에 대한 정죄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십니다(17-18절). 이 말씀을 곡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표징들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그런 표징을 과시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그런 이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표적이 일어나는 것은 간헐적인 현상입니다. 이적과 기사는 복음의 핵심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따라서 표적에 집착하는 것은 사이비 신앙으로 기울어지는 위험 신호입니다.
묵상: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사실을 확인시켜 주시면서 온 세상에 퍼져 나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이 부활 사건에 대해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일치하는 지점입니다. 그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서 저자들도 그 사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까닭은 모두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진실입니까? 인간은 누구나 영원한 멸망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합니다. 부활의 사건은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면 죄 용서를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을 다 마친 후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갑니다.
무신론 과학자들은 “우리는 죽어서 무로 돌아간다”(We die into nothing)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활의 복음은 “우리는 죽어서 하나님께로 간다”(We die into God)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므로 믿는 이들은 그분 안에서 영원을 누립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모태에 있는 생명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땅에 건강하게 태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복음은 모든 이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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