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 437

'주옵소서'와 '받으옵소서'

'주옵소서'와 '받으옵소서' 글쓴이/봉민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성도의 온 관심사는 하나님께 무엇을 받기 위하여 줄을 서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그렇다.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께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산다고 나를 위장 하지만 정직하지 못한 나의 욕심을 감출 수가 없다. 나는 생각을 한다. '주옵소서'와 '받으옵소서'의 간격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나의 신앙생활의 온 생애가 '주옵소서' 였던 것 같다. 입으로는 '하나님 영광 받으소서' 말하지만 주시지 않는 것에 대한 나의 욕망적 집착이 언제나 컸다.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며 예배를 드리는 모든 것이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모든 것..

왼손잡이는 고쳐야 하나?

왼손잡이는 고쳐야 하나? 13년 남짓 유치원 교사를 한 강미희 교수는 오래전부터 왼손잡이는 고쳐야 할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왼손잡이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을 들을 때마다 그녀도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좌절감을 겪고 힘겨워하는 것을 보면서 왼손잡이를 꼭 고쳐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그녀는 왼손과 오른손 사용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연구 결과 왼손잡이는 유전적인 요소와 좌우뇌의 발달로 인한 것으로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연구 끝에 그녀는 더 이상 왼손잡이의 교정에 몰두하지 않았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고쳐야 할 것은 왼손잡이가 아니라 사람들 편견입니다." 고정관념이란 당연한 것처럼 알려져 머릿속에 굳어진 생..

하나님은 다윗의 주이십니다.(삼하 7:1-17)

삼하 7:1-17 묵상입니다. 다윗과 함께하시어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이 왕 됨의 목적인 다윗. 분명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입니다. 다윗은 나단에게 성전건축 소원을 얘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생각과 다릅니다. 성전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다윗의 주이십니다. 다시 한번 다윗과의 언약을 상기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나라를 세워가십니다. 나의 삶의 주어가 내가 될 때가 많습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소서!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게 하소서!

다윗 언약 (삼하 7:1-17)

삼하 7:1-17 묵상입니다. 다윗은 자기 삶의 평안에 만족하지 않고 법궤를 모실 여호와의 집 건축을 간절히 원합니다. 다윗의 소원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은 냉철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누구에게도 집 건축을 요구하지 않으셨다는 것. 오히려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해 집을 지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의 의미는 다윗과 다윗 왕조와 나라의 위대함과 강성과 안정입니다

107. 항상 기뻐하라

[기도/말씀]​ ​ 주님,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 샘솟듯 솟아나게 하시며. 주님 부르실 때까지 그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배경/해석]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 예수 믿고 난 후에 이전과 다른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존재가 된 저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시기 위하여 3가지를 명령어를 ..

주 안에서 평안하지요?

참 좋은 계절입니다. 이렇게 때를 주관하고 계신 분이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신비롭게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또한 그분께서 우리의 창조주 되심과 우리를 구원의 주 되심이 신비롭고 감사하게 됩니다. 함께 믿음의 길을 가게하심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지요? 일상 가운데 안부를 묻고 지내지 못함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기도 가운데 교통하고 있음에 감사하네요. 그러나 위해 기도하고 있다하지만 여전히 피상적이네요. 주 안에서 견실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며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기쁨으로 섬기며 지혜롭게 기업을 가꾸어가길 기도하고 있지요. 하여 비록 얼굴을 대한 지 꽤 오래 되었지만 형제는 낯설지 않네요. 무엇보다도 자매가 지난 날 겪었던 어려움에서 온전히 자유케 되며 이전보다 더 강..

인간의 연약함!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 신실하신 언약!(창20:8-18)

인간의 연약함!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 신실하신 언약!(창20:8-18) 본문은 아브라함의 불신앙적 행위를 보여주는 연속 부분이다. 즉 사라를 취하려다 꿈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경고를 들은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아브라함의 행위를 책망한 사실과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변명이 기록되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 가지다. 첫째, 인간의 연약함이다. 비록 부족한 인간이지만 오직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에 의해 구속사를 이루어 가셨다. 둘째,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행동을 질책하거나 그를 벌하기 보다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사라를 지켜주셨다. 셋째,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이다. 본문에는 언약의 상대자(아브라함)의 불성실로 인하여 그 언약이 파기..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시편88: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시편88:9). 시편 기자는 매일매일 주님을 부르며, 주님께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은 기도는 기도하는 자의 젖줄이고, 밥줄이고, 생명 줄입니다. 특히 곤란한 처지에 놓이고, 곤란한 일을 당하여 눈이 쇠하도록 주님을 바라며 기도할 때 곤란한 일을 풀어주십니다. 지금 모든 일이 너무 순탄하고 평안합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순탄함과 평안함 속에서 하나님과의 동행의 풍성함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게 해주시길 기도하십시오. 지금 아무 일도 없고, 그렇다고 하나님과 교제도 없고, 그냥 세상의 물결 따라 떠내려가듯이 살고 있다면 지금부터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기..

예수의 가르침 (5)(막 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불교의 선종(禪宗)에서는 화두(話頭)가 가르침과 배움의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스승이 제자에게 말의 머리만 제시하고 제자가 스스로 깊은 사유를 통해서 어떤 깨우침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콩놔라팥놔라 하고 일일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자가 생각할 수 있는 방향만 제시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교육에서도 이런 스스로의 깨우침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육의 내용이라 할 영에 대한 체험은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는 게 아니라 영이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비록 성령에..

예수의 가르침 (4)(막 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가르침은 배움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돼지 앞의 진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히 진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된 배움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선입관이 배움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천동설에 묶여있는 사람은 지동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레드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사람은 북한과의 상생과 평화관계를 꿈꾸지 못합니다. 율법에 묶여 있는 사람은 복음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