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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거스르는 그리스도 (눅 14:1-14) / 신동식 목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서 떡을 잡숩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엿봅니다. 이미 이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비판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그때 수종병 든 여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통하여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에게 질문을 합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합당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잠잠합니다.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그러자 예수님께서 여인의 수종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런 후에 비유를 통하여 비판과 안식일의 참된 의미에 대하여 답하십니다.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묻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할 말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소를 건질 것이기 때문..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가?(마가복음 8:22-26) / 원용일 목사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가?(마가복음 8:22-26)‘정결’이라는 관점으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신(7장) 후 예수님은 한층 더 십자가로 가까이 제자를 이끄십니다. 벳새다에서 한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신 일을 통해 십자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주십니다.마가복음 8:22-26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

내가 만들어 놓은 감옥 / 봉민근

내가 만들어 놓은 감옥       글쓴이/봉민근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다.내가 있는 곳에서 갇혀서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니다.세상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터전이다.세상을 넓게 보자. 세상은 크고 하나님의 뜻은 웅대하시다.교파에 갇히고 교리에 묶이고 사람의 말에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음이 안타깝다.하나님을 내 안에 가둬 놓고 만유의 주 되심을 거역하는 불신앙으로 살고 있다.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다.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하나님의 다양성을 부인하면 그것이 죄가 된다.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고 하는 것이 오만이요 교만함이다.하나님의 손길은 저 넓은 우주공간에서도 우리 몸의 지극히 작은 세포 속에서도 쉼 없이 일하고 계신다.내 교회에만 역사하..

멜기세덱과 예수님 (히 7:1-10) / 김영봉 목사

해설:6장 20절에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라고 했다. 저자는 7장에서 그 사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5장 11절에서 저자는, 멜기세덱에 대한 이야기가 미숙한 사람에게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경고한 바 있다.  “살렘”(평화)의 왕 멜기세덱은 “정의의 왕”(2절)이라는 뜻이다. 그는 왕이면서도,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나타나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고 축복해 준 제사장이기도 했다(창 14:17-21). 성경에는 그의 출신과 배경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다(3절). 예수님 이전에 유대 랍비들은 멜기세덱의 정체에 대해 많은 논쟁을 벌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우리는 지루함을 느낄 때마다 변화를 원합니다.더 나은 삶을 꿈꿀 때도, 재능을 발전시키고 싶을 때도새로움을 추구합니다.새로운 것들은 기존의 틀을 깨뜨리고,익숙함을 뒤흔들며 다가옵니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우리는 변화를 원하면서도 정작 기존의 틀을깨는 것은 두려워합니다.새로워지고 싶으면서도 기존에 해오던익숙한 것들을 놓지 못하는 것이죠.새로운 도전은 늘 혼란을 동반합니다.안정적으로 유지해 오던 일상이 흐트러지고,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기며, 행동반경의 변화가 생기는 등불필요해 보이는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생기는 것입니다.어쩌면 변화에 불편함이 따르는 것은당연한 이치일 수 있습니다.우리에게는 원래 상태를 유지하려는 본능,낯선 길보다는 익숙한 길로 돌아가고자 하는본능이 더 크기 때문..

우리의 생명과 소유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눅 16:1-13)

눅 16:1-13 묵상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소유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입니다.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관리해야 합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일지라도 지혜로워야 합니다.맡은 소유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재물은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재물의 노예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방편인 소유에 지배당할 수 있습니다.탐심이 우상 숭배라는 말씀을 되새깁니다.지혜롭고 충성스런 청지기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제자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지혜와 충성을 다 바쳐야 합니다.(눅 16:1-13) / 방광덕 목사

눅 16:1-13 묵상입니다. 불의한 자들도 제 살 길을 위해서라면 지혜를 짜고 충성을 다 바칩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지혜와 충성을 다 바쳐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불의한 자들의 생존 방법론을 배울 것이 아니라 생존 열심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이 구속사적 기록이기 때문(대상3:10-16) / 리민수 목사

성경이 구속사적 기록이기 때문(대상3:10-16)  본문은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바벨론 포로 생활 이전(B.C.1010-586)까지 유다 왕국을 다스리던 20명 즉 솔로몬에서 시드기야까지의 왕들이 이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비교적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을 행한 왕들은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바샤, 요담, 히스기야, 요시야 등이고, 그렇지 못한 왕들은 르호보암, 아비야, 요람, 아하시야, 아사랴, 아하스, 므낫세, 아몬,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등이다. 역대기 기자는 특별히 남유다의 역대 왕들이 족보만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가 이스라엘 전 민족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에 의거한 구속사를 보여 주려했기 때문이다.

헌금(1) / 정용섭 목사

헌금(1)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으니그동안 바친 헌금 액수만 해도 꽤나 될게다.어느 정도 기독교인 티를 내는 이들은 다 그렇다.학생 때에야 돈이 없으니헌금을 했다고 해도 액수로만 보면 별 게 아니다.수입이 생기면서는 정기적으로 헌금했다.헌금을 드려야 할 기회가 오죽 많은가?매주, 매달만이 아니라어떤 때는 거액을 드려야할 때도 있었다.한국교회에서 헌금은 신앙생활 자체라고 봐야 할 정도로모든 것에 붙어 다닌다. 재미있는 현상은한국교회가 교회력을 무시하면서도네 번의 절기는 반드시 지킨다는 것이다.성탄절,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이 그것이다.이 절기의 공통점은 헌금이 개입된다는 사실이다.헌금과 연관되지 않는 절기는 그냥 지나가거나형식적으로 대하기 일수다.저런 절기에 자의반타의반으로 헌금을..

예수 친구 / 정용섭 목사

요 15:14절은 이렇다.‘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이어 15절에서는 이를 다시 강조하면서예수와 제자들의 관계가‘주인과 종’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이다.종은 주인의 뜻을 모르지만친구는 다 안다.왜냐하면 속마음을 다 말하기 때문이다.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궁극적인 진리를 다 말했다는 뜻이다.출 33:11절에 따르면모세는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율법의 발원자로 알려진 모세에게 어울리는 평가다. 예수와 제자들의 친구 관계나하나님과 모세의 친구 관계에서 핵심은깊은 대화, 또는 영적 소통이다.그런 관계에서는 막힐 게 없다.그게 영성의 최고 경지이고,더 나가서 구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대화 상대자를 찾는다.그게 없으면 외로워서 견디지 못한다.동갑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