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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을 심는 자, 안식을 파괴하는 자(창9:18-27)(중 일부) / 신권인 목사

안식을 심는 자, 안식을 파괴하는 자(창9:18-27) 창세기 9:18-27은 단순한 가족사나 도덕적 교훈의 본문이 아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안식과 언약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예표 되고 성취되어 가는지를 드러내는 구속사적 장면이다. 종말론은 단지 시간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새 창조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한다. 노아의 이름은 히브리어(노아흐) 쉼, 안식을 의미하며, 그는 하나님의 안식을 예표 하는 인물이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무지개 언약, 즉 창조 세계의 보존을 약속하셨다. 그는 단지 방주를 지은 자가 아니라, 새 창조 질서를 시작하는 언약의 담지자다. 노아가 심은 포도원은 단순한 농사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풍요와 안식을 상징하는 종말론적 행위로 해석된다...

언약궤의 성전 안치(대하5:1-10) / 리민수 목사

언약궤의 성전 안치(대하5:1-10) 언약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선민 언약의 증거로서, 결국 하나님이 백성과 맺으신 언약에 따라 백성 중에 거하시며 백성을 구원으로 이끄심을 상징한다. 따라서 언약궤를 지성소에 옮기는 작업은 성전 봉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솔로몬은 언약궤의 운반에 얽힌 선왕 다윗의 실패와 성공을 교훈 삼아, 신중히 레위인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조처했다. 그리고 다윗이 제사를 드린 전례에 따라 언약궤를 무사히 옮기고 감사와 기쁨의 제사를 드렸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벧전1:21) / 이금환 목사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1:21)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셔서 부활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사는 우리는 또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는 명령을 따라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어렵고, 사랑이 가지 않는 형제자매까지도 뜨겁게,..

목사공부(196)- 죽음(5) / 정용섭 목사

죽음(5) 내일(또는 일 년 후나 10년 후) 내가 죽었다고 상상해보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가족들과 교회 신자들이 장례식을 거행할 것이다. 장례식은 따지고 보면 죽은 이를 위한다기보다는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죽은 이는 시간과 공간의 결합으로 경험되는 이 세상을 이미 떠났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장례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람들을 모을 게 아니라 가족끼리만 조용하게 절차를 밟아서 화장하고, 남은 재는 납골당 같은데 두지 말고 산이나 강에 뿌리는 게 가장 간편할 것이다. 당장은 아내와 딸들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모두에게 좋아 보인다. 내 몸을 의학실험용으로 내놓는 것도 고려해볼만하다. 의학도들이 내 몸을, 비록 죽은 몸이지만, 마음대로 다루는 게 꺼림칙하지만 곰곰이 생..

목사공부(195)- 죽음(4) / 정용섭 목사

죽음(4)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다닐 때 나는 친구들과 노는데 정신을 팔았다. 당시 아이들은 대개 그랬다. 부잣집 아이들은 좀 다르긴 했지만 서민 가정의 아이들은 노는 게 일이었다. 그때가 그립다. 당시는 1960년대였다. 우리는 2000대가 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과 실제로 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혼자 생각했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하는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어쨌든지 당시의 내 의식에는 2000대라는 게 신비의 시간이었다. 너무 까마득한 미래인 탓에 현실감은 별로 없었다. 내 나이를 계산하면서 막연하게나마 뭔가 내가 거대한 힘에 붙잡혀 있는 것처럼 느꼈다. 이제 그 막연하면서도 신비롭게 생각했던 시간이 실제적로 왔고, 그리고 지났다. ..

목사공부(194)- 죽음(3) / 정용섭 목사

죽음(3) 1981년 후반기인지 1982년 전반기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당시 나는 8사단 포병단 군종장교(군목)로 근무하고 있었다. 부대에서 인사사고가 일어났다. 한 병사가 죽었다. 당시만 해도 이런 일들은 군대에서 일상으로 일어났다.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히기도 힘들고, 책임자 처벌을 더더욱 힘들었다. 당시 표면적으로 밝혀진 사고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저녁 식사 시간 뒤에 점호가 이루어졌다. 공식적인 점호 시간이기는 하지만 이때 고참이 내무반 병사들의 군기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화기의 개머리판으로 한 병사의 배를 쳤고, 병사는 가슴을 부여잡고 쓸어졌다. 그 병사는 죽었다. 부검을 하기로 했다. 상급 부대에서 부검의가 내려왔다. 장소는 천막이 설치된 연병장이었다. 우리부대 군의관은 부검 현장에 입..

목사공부(193)- 죽음(2) / 정용섭 목사

죽음(2) 이제 내가 죽음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해보겠다. 우선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죽음에 대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기억해내야겠다. 첫 경험은 어머니의 죽음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다. 7남매를 낳으셨지만 육이오 때 하나를 읽고 막내가 겨우 한 살을 넘긴 40대 초반의 어머니는 뇌수술을 크게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아가셨다. 그 과정에서 기억나는 건 별로 없다. 몇 장면이 오래된 영화의 스틸 자신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열 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큰 누님의 손에 끌려 다른 곳에서 요양하고 있던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분은 앉은 채 방문을 열고 우리를 맞았다. 그 모습이 나에게 너무나 낯설었다. 반쯤 풀어헤친 긴 머리카락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오래 머리를 감지 않은 탓인지 ..

목사공부(192)- 죽음(1) / 정용섭 목사

죽음(1) 목사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죽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목사의 설교는 따지고 보면 신자들에게 죽음을 준비하라는 설득이요 권면이자 선포다. 죽음에 대한 공부와 경험 없이 설교할 수 없다. 설교만이 아니다. 목사의 배타적 카리스마에 속하는 세례와 성만찬도 역시 죽음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세례는 예수와 더불어 죽고 다시 산다는 것이고, 성만찬은 세례의 일상화다. 목사는 장례의식도 자주 감당해야 한다. 결국 목사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신자들에게 죽음에 대해서 자주 말할 수밖에 없다. 현대 목회는 죽음을 별로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대부분 세상에서의 삶에 치우쳐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아 행복하게 사는 길을 제시하기에 바쁘다. 세상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종교..

또다시 가야 할 인생의 ‘길’ / 원용일 목사

또다시 가야 할 인생의 ‘길’“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삼상 26:25하). 다윗이 망명 시절에 추격하던 사울 왕을 두 번째 살려준 일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한 해의 절반을 보내며 길 위에 있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다윗이 자기 길로 갔다는 것은 일종의 ‘퇴근’을 말한다. 그런데 그날 일을 마치고 돌아갈 곳이 없었다. 어젯밤에 잠을 자고 일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새롭게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다. 다윗은 유랑자였다. 나그네 세월을 뼈아프게 겪었던 길 위의 인생이었다. 다윗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힘든 길을 가야 했다.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민족 앞에 등장했지만 억울하게도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궁궐을 떠나야 했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

행복한 동행 / 김영봉 목사

지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여름성경학교(Vacation Bible School)가 있었습니다. 전부 57명이 등록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행”(Road Trip on the Go with God)이라는 주제로 성경도 배우고 노래와 춤도 배우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24명의 교우들이 교사로, 봉사자로 참여하셨고, 다섯 명의 유스 학생들도 참여했습니다. 펜더 교회의 봉사자들은 우리보다 수는 적었지만, 다년 간의 경험으로 훈련된 분들이었습니다. 우리 교우들과 펜더 교우들이 섞여서 프로그램을 인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기뻤습니다. 브루스 목사님도 이렇게 아름다운 동역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해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주 예배 중에 교사와 봉사자들을 위한 점심 식사 제공에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