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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백성도 공의로 심판받는다(대상3:17-24) / 리민수 목사

언약 백성도 공의로 심판받는다(대상3:17-24) 본문은 유다 왕국의 멸망 이후의 다윗 가문의 족보로서, 유다 왕국이 자기들이 죄악으로 멸망의 심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다윗의 계보는 하나님의 언약(삼하7:16)에 의해 단절되지 않고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계속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남유다의 멸망으로 잠시 단절된 듯 보이는 다윗 왕가의 모습은 언약 백성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못할 때에 공의로 심판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에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비록 선민의 국가인 유다 왕국은 멸망시켰을지라도, 선민 그 자체만은 계속해서 존속시키고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약 3:2-3) / 이금환 목사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야고보서3:2-3) 말은 어렵습니다. 말이 어렵다기보다는 혀를 제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재갈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만일 눈에 보이지 않는 재갈이 없다면 끊임없는 말의 실수가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쉬지 않고 쏟아내는 말의 실수는 말 할 것도 없고, 한 마디의 말도 안하던 사람의 단 한 마디라도 그것이 공격이고, 험담이고, 비난이고 욕설이라면 아무리 고정되어 있던 것 같은 혀라도 결코 잘 제어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과 말씀으로 제어되는 마음과 그 마음을 경..

헌금(6) / 정용섭 목사

헌금(6)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데 길들여졌다.이런 게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나그 강도가 점점 심해지는 건 분명하다.물건을 사는 경우에도 한 푼이라도 아낀다.재정적으로 손해를 보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 한다.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도따지고 보면 연봉의 차이에 있다.비정규직이 정규직 못지않게 연봉을 받을 수 있다면이런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정부는 돈으로 대학교를 주무른다.대학교는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조금이라도 더 타내려고온갖 비위를 다 맞추고 있다.비위를 맞추는 것만이 아니라 부정도 마다하지 않는다.지금 세상이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손해를 보지 말아야겠지만어느 정도 살만한 사람들은 손해를 봐도 된다.나도 어느 정도 살만한 사람에 속하기에웬만하면 손해를 봐도 그..

헌금(5) / 정용섭 목사

헌금(5) 앞에서 헌금의 왜곡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말했지만,다른 한편으로 보면 헌금에 참여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일 수 있다.헌금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도 둘로 구분된다.하나는 헌금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들이고,다른 하나는 경제적으로 궁핍해서 어쩔 수 없는 이들이다.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야 여기서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돈이 없는 사람은 헌금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문제는 헌금 냉소주의자라 할 수 있는 첫 부류의 사람들이다.그런 방식으로는 영혼이 건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헌금 행위는 쉽지 않다.철저하게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더 그렇다.기복적인 태도로 헌금을 드리는 사람이나냉소적인 태도로 헌금을 드리지 않는 사람이나동일하게 물신 숭배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다..

헌금(4) / 정용섭 목사

헌금(4) 앞에서 글에서 밝힌 것처럼우리가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지만하나님이 직접 받을 수는 없다.대신 사람이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한다.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나 똑같다.전업으로 성전이나 교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생활비,성전이나 교회당 건립과 보수 유지비,선교 활동이나 구제 등등,두루두루 하나님의 일로 판단되는 일에 사용된다.그러니까 하나님께 바친다고 말은 하지만실제로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판단한 것을 위해서 바친다.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냐에 대한 판단은 서로 다르다.어떤 사람은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이라고 볼 것이고,어떤 사람은 신학자를 키우는 일이라고 볼 것이다.북한 주민을 경제적으로 돕는 일을 보는 시각도 다르다.이런 차이야 각자 신앙과 세계관에 따른 것이니 어쩔 수 없다.세상살이도 각자 다르..

헌금(3) / 정용섭 목사

헌금(3) 우리는 헌금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표현한다.샘터교회에서도 헌금을 드리고 기도할 때‘하나님께 드렸다.’고 한다.이게 무슨 뜻일까?이런 문제를 구약의 전통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꼼꼼히 따지기 시작하면 복잡하니, 여기서는 쉽게 생각하자. 하나님은 물질적인 분이 아니라 초월적인 분이기에우리가 돈으로 드리는 헌금이 그분과는 상관없다.이는 마치 강이나 산을 향해서돈을 받으라는 말과 비슷하다.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이 세상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니,즉 창조부터 종말까지의 전체 세상이 하나님이시니일시적으로 우리에게 도구로 사용되는 돈을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실제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구약 선지자들도 그런 말을 자주 했다.하나님은 사람들이 바치는 소와 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래도 성경에..

헌금(2) / 정용섭 목사

헌금(2) 헌금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꼭 헌금을 해야 하나?헌금 없는 교회는 가능한가?구약의 제물과 신약의 헌금은 같은 전통인가?헌금과 연보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왜 한국교회에만 십일조 헌금이 있나?가톨릭교회는 왜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나?헌금을 얼마나 내야 하나?기명헌금이 옳은가, 무기명헌금이 옳은가?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돕는 것도 헌금에 속하나?목사들도 스스로 노동해서(자비량 선교) 먹고 살면 안 되나?헌금이 어떻게 사용되는 게 최선인가?등등... 여기서 모든 문제를 균형 있게 다 다루기는 힘들다.단순히 신학 에세이 정도의 글로 만족하자.미리 밝혀두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1)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전업 목사라는 사실은자칫 한쪽으로 치우친 글을 쓰기 쉽다.어제의 글에서 내가 지난 40 ..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시 36:5~10) / 김재홍 목사

주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하늘에 가득 차 있고, 주님의 미쁘심은 궁창에 사무쳐 있습니다. 주님의 의로우심은 우람한 산줄기와 같고, 주님의 공평하심은 깊고 깊은 심연과도 같습니다. 주님, 주님은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돌보십니다. 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어찌 그리 값집니까? 사람들이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습니다. 주님의 집에 있는 기름진 것으로 그들이 배불리 먹고, 주님이 그들에게 주님의 시내에서 단물을 마시게 합니다.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친히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의를 변함없이 베풀어 주십시오.------1. 지옥 같은 어둠 속에 놓..

하나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할 자 (눅 14:15-24) / 신동식 목사

예수님께서 잔치를 베풀 거든 갚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면 의인들의 부활시에 영광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이 말은 들은 사람들이 무릇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맛보지 못할 자가 있음을 말씀합니다.예수님은 잔치를 베푼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을 하였으나 다양한 핑계로 응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종들에게 거리의 사람들을 초청하라고 합니다.거리의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초청합니다. 그래도 모자르자 산으로 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초청할 것을 제자들에게 명합니다. 그러면서 초청을 받고도 거부한 자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