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5 14

죽음은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과정(신14:1-2)

죽음은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과정(신14:1-2) 본문은 당시 근동의 풍습 가운데에는 장례식 때 죽은 자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 자기 몸을 자해하는 등 미신적인 행위가 흔히 행해졌는데 이것을 본받지 말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 날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을 보고 슬퍼하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제어하라는 말은 아니며, 다만 성도는 죽음을 영원한 이별로 생각하여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죽음은 인생이 고된 순례의 여정을 마치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흔들스리지 않는믿음의 순례길이 되게 하시옵소서!

생명의 주가 되시며 역사의 주권자 되시며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이라는 날을 선물로 주시고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은혜를 베불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방무창형제의 영혼을 밭아주심을 찬양합니다.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시고 부활의 소망 가운데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과 화평을 누리시며 남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원하건대 모든 천국환송잔치가 순조롭게 하시옵소서! 모든 가족들이 하나 되게 하시고 모든 친구들이 사랑하는 방무창형졔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며 되새기게 하시고 그 따뜻한 마음을 이어가게 하시옵소서! 사모님의 마음을 주관하시고 순간순간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은총을 누리..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대하7:14)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대하7:13-14)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길, 악한 길, 교만한 길로 가고 있다면 언제든지 그 길에서 돌아서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향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더욱이 자신의 삶이나, 가정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죄악과 잘못된 길로 가고 있고 그로인해 하나님께서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

임마누엘 (마태복음 1:18~25)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고 인사합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메시 크리스마스(Messy Christmas)’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뒤죽박죽된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에 질투를 느낀 헤롯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대학살 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 누이신 곳은 동물의 먹이통이었습니다. 동물의 우리에 있는 먹이통에 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처녀가 아이를 낳은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초자연적인 기적이며, 사람들을 매우 당황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헌금(6)(막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막12:42) 간혹 헌금과 물질적인 축복을 연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에 해당되는 성구를 끌고 오면서 말입니다. 헌금에 해당되는 성구는 주로 구약이더군요. 대표적인 것은 십일조를 말하는 말라기서겠지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음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특히 구약성서를 해석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 중의 하나는 그것이 일반적인 것인지 특수한 것인지를 분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보도는 특수..

헌금(5)(막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막12:42) 저는 어제의 묵상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드리는 물질과 아무 상관없이 그분의 고유하고 배타적인 능력으로 구원을 실행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헌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필요성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헌금은 피조물인 우리가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신앙 고백적 상징입니다. 예배도 그런 사실에 대한 신앙 고백적 차원의 송영입니다. 헌금은 예배를 구성하는 요인이지요. 형식을 갖춘 예배와 헌금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그렇게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 경우에는 일정한 형식을 필요로 합니..

헌금(4)(막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막12:42) 헌금이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서 가장 큰 착각은 하나님이 우리의 헌금을 필요로 하실 거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마치 우리 인간처럼 배가 고프거나 아쉬운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존재의 근거가 완벽하게 외부에 놓인 인간과 달리 하나님은 존재의 근거가 완벽하게 내부에 놓였기에 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 하나님의 구체적인 일을 위해서 헌금이 필요하지 않느냐, 하는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전도, 교육, 봉사, 심지어 예배도 어렵다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드린 ..

잠언 16장: 믿음과 겸손

해설: 16장부터 22장 16절까지는 왕실에서 형성된 잠언들이 많이 나옵니다. 10장부터 15장에 수록된 잠언들과 성격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장에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통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모든 것이 사람 하기 나름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인간은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생각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일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겸손히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습니다(1절, 3절, 9절).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맞게 만드셨고(4절),..

어려움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 [2024. 1. 25. 목. 일터소명 묵상]

어려움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예레미야 32:8, 15) 8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나에게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전쟁이 나고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는데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을 아십니까?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게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여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사촌 하나멜이 와서 아나돗의 밭을 사라고 하면 그 밭을 사라고 하셨습니..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에발산에서 저주를(신 11:18-32)

모세의 반복되고 강조된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말씀에 기반합니다. 말씀이 복과 저주의 기준이 됩니다. 그러기에 부지런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에 두고, 손목과 미간에 붙이고 자녀에게 일상에서 가르치고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것을 말씀합니다. 삶의 매 순간을 말씀 의존 신앙을 의미합니다. 말씀이 인도하는대로 사는 이에게 복이 있습니다. 불순종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음을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선포됩니다. 저주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 의존 신앙은 싫어합니다. 아니 힘들어 합니다. 자기 의존 신앙을 살고자 합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부패한 본성을 가진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세상 법에 앞서 말씀의 법을 따라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