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5 15

분명 주님께서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형편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만이 될 모든 일들을 아시고 친히 주권적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 되시고 하나님만이 구원의 주가 되시고 하나님만이 섭리의 주가 되십니다 이를 믿음으로 알게하심은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고백하심 또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이기에 믿음에 믿음을 더하시길 간구하게 됩니다. 나의 연약한 믿음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무릎 꿇습니다. 얼마나 힘드신지요? 어쩌면 어둠의 벽이 앞을 가리고 생각도 멈추는 듯 하고 시간의 흐름도 멈춘 듯 하고 온갖 생각에 마음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허공을 헤매며 작은 일에 민감하며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 하지는 않으지요? 지난날들이 소환됩니다. 연약한 믿음에 고개를 숙였던 나의 모..

순종에 따르는 축복(신11:13-25)

순종에 따르는 축복(신11:13-25) 본문은 앞 단락에서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제시하고 있다. 말씀 순종에 따르는 축복의 핵심은 첫째, 장차 가나안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신다는 것이다(14절). 여기서 비는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둘째, 어떠한 원수의 강력한 세력 가운데에서도 번영하며, 부강하리라는 것이다(25절).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말씀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요한복음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8:12) 예수님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빛의 근원이고, 그 빛을 받는 자를 통해서 또 빛을 발하게 하는 빛의 빛이십니다. 이 빛을 따르고, 믿고, 이 빛 안에 거하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세상의 빛이 되고, 영생을 얻고, 세상을 향하여 생명의 빛을 발산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믿음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또한 이 빛으로 말미암아 이미 빛이고, 소금입니다(마5:13-14) 오늘도 빛의 근원이시고, 그 빛을 받는 자로 하여금 다시 빛을 발산하게 하는 빛, 세상의 빛, 생명의 빛,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으로 받고, 그 빛의 소유가 되고, 그 빛..

언약 백성을 향하여 사랑으로 권면하는 모세.(신 6:10-25)

신 6:10-25 묵상입니다. 출애굽의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입고 가나안의 풍성한 삶을 약속받은 언약 백성.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로 경배함이 마땅합니다. 언약 백성을 향하여 사랑으로 권면하는 모세. 언약 백성이 풍요로운 삶을 누림으로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숭배할까 염려합니다. 불순종의 때에 베푸신 인자하심을 되새기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후손에게 삶으로 믿음의 본을 보이라 강권합니다. 놀라운 구원의 감격과 베푸신 은혜를 잊고 화석화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과 말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은혜로 채워집니다.(신 6:10-25)

신 6:10-25 묵상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은혜로 채워집니다.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채우지 못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우리가 채운다는 교만과 착각이 하나님을 진노케 하시는 우상숭배를 낳습니다. 하나님 은혜는 하나님 하신 일의 기억과 말씀 순종을 동반합니다. 하나님 은혜는 더욱 풍성한 속성을 지닙니다.

그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내주신 문자를 보는 순간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형의 모습을 생각해 보며 방형 앞에 서 있는 귀한 가족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상상하기 조차 힘든 모습이기에 그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식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조차 할 수 없는 나의 연약한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지만 기도 외에는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자신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잘 견디시는 모습에 머리를 숙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고 계심에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얼마나 쉽게 믿음이 흔들리곤 하는지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방형의 마음을 만져주시..

산 자의 하나님(3)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막12:27) 살아있다는 것을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너무 도식적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람의 입장과 하나님의 입장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이런 짧은 글쓰기에서 이런 문제를 일일이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아쉬운 점은 그대로 남겨둔 채 중요한 것만 짚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논점은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너무 작은 범주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생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그런 선입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의 생물학적 생명현상이 멈추는 사건인 게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

산 자의 하나님(2)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막12:27) 우리는 살아있다는 말의 의미를 너무 축소시킨 채 살아갑니다. 생물학적인 차원으로 좁혔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뇌와 심장이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세포가 분열하고 위장이 움직이며, 그래서 신진대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생명 현상으로 우리는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기만 한 걸까요? 다른 건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이런 생명 현상이 순식간에 끝장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병이 들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아니면 늙으면 우리의 생명 현상은 끝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말은 이런 한계 안에서만 사실입니다. 이런 것을 궁극적인 것이라고 말할..

산 자의 하나님(1)(막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막12:27) 저는 어제의 묵상에서 출애굽기 3:6절의 인용이 부활에 대한 근거로 얼마나 정확한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신약의 관점을 통한 해석으로 그 의미가 훨씬 심층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에 나타납니다. 우선 그 이유를 문장의 표면적 의미에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의 관점에서 출애굽기 3:6절이 말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운운은 아브라함이 살아있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며 지금 생명의 주인입니다.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생명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생명 자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했다는 것은..

사도행전 연속설교를 시작하며

‘로잔 운동’(Lausanne Movement)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70년대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주도하여 시작된 운동입니다. 그는 개신교회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선교의 길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전 세계의 복음주의 권 개신교 지도자들을 규합하여 1974년에 스위스의 로잔에서 세계 대회를 열었습니다. 전 세계 150개국에서 2천 5백 명 정도가 모인, 역사 상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이 대회의 의미는 참석자의 규모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대회에서는 여러 가지의 보고서와 논문들이 발표 되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교계 지도자들은 과거의 선교 방향과 방법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통전적이고 건강한 선교 정책을 모색했습니다. 그것은 가톨릭 교회가 1962년에 모였던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