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4 12

하나님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신8:11-20)

하나님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신8:11-20) 본문은 과거 하나님의 은혜(1-6절)와 장차 이스라엘이 누리게 될 축복(7-10절)을 언급한 모세는 또 다시 이스라엘의 자만과 그로 인한 배신 행위를 엄히 경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가나안 땅에서의 풍요한 삶으로 인하여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권면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길이 기억하라는 것이다. 특히, 본문은 자신이 누리는 축복이 스스로의 노력과 수고의 결과인 것처럼 교해지지 말라(17-18절)는 강력한 경고를 주시고 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권위에 대한 논쟁(7)(막11: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막11:33) 대제사장 집단은 예수님의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그들이 처음에 던진 질문에 대해서 “나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답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위의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뭔가 권위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지 않을까 했는데 아주 시시하게 끝났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권위는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라는 그 직책에 있었습니다. 판넨베르크 박사는 설교 “권위의 근원”에서 예수님의 권위를 사실성(Sachlichkeit)의 차원에서 설명..

권위에 대한 논쟁(6)(막11: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막11:32)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대제사장 집단은 세례 요한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요한의 세례가 하늘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해야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사람들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합니다. 그들의 딱한 처지에 동정을 느낄 필요는 없겠지요. 다른 사람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스스로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진리를 따르기보다는 당장의 이해타산에 민감했으니까요. 만약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했다면 민심이 어찌되었든지 자신들의 소신을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

권위에 대한 논쟁(5)(막11: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막11:31)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하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대제사장 그룹은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뻔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던 거지요. 그들이 왜 세례 요한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한 설명이 복음서에는 없습니다. 원래 요한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명문가 출신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차례에 따라서 제사장 실무를 맡고 있을 때, 요즘으로 바꿔 말해서 목사나 장로로 시무하고 있을 때, 성전에서 천사로부터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

잠언 1장 20-33절: 교만의 위험

해설: “지혜”는 히브리어로 ‘호크마’입니다. 호크마는 여성 명사입니다. 옛날 히브리 사람들은 지혜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습니다. 인격체로서의 지혜는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은 지혜를 통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우주의 운행과 생명 현상을 관찰하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발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지혜를 요한은 ‘로고스’라고 불렀습니다. “태초에 그 말씀(로고스)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요 1:1-3) 잠언의 저자는 ‘지혜 여인’이 성을 두루 다니며 자신을 따를 사람들을 찾는다고 말합니다(20-21절). “어수룩한 사람”과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세기12: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창대하게 하시는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창12:2) 아브라함은 아브라함 자체가 복인 사람이었고, 복의 통로가 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가 "말씀을 따라"(창12:4)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실수나, 허물이나, 실패가 전혀 없는 믿음으로만 똘똘 뭉쳐있는 흠도 티도 없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이었고, 그 약속의 실체인 ..

치열한 일터 현장도 거룩한 땅! [ 2024. 1. 4. 목. 일터소명 묵상]

치열한 일터 현장도 거룩한 땅!(여호수아 5:14-15)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박규숙 시인의 시 《골방예수》가 제 마음을 콕 찔렀습니다. 새벽기도를 끝내고는 골방 깊숙이 예수님을 가둬두고 출근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일하는 곳에 오셔서 원하지 않는 것을 보고 들으시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꽁꽁 묶어 골방에 가둡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의 주인이 되어 내 맘대로 살아갑니다.(『..

하라고 할 때는 안 하고 하지말라고 할 때는 하고(신 1:34-46)

모세의 설교는 이스라엘 백성의 청개구리같은 모습을 지적합니다.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에 불순종합니다. 아낙 자손을 본 두려움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홍해길을 지나 광야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러자 바로 이들은 가나안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함께하지 않으니 패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듣지 읺고 산지로 올라갔고 결국 패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산지로 올라가 아모리 족속에게 대패한 후에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였지만, 하나님은 듣지 않으셨습니다. 왜 이럴까? 하라는 것은 안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할까?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봅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에 청개구리 같은 모..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목숨을 걸어라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목숨을 걸어라 글쓴이/봉민근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바치라.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인생에 가장 큰 비극이다. 그분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이 있다. 우리의 생사화복도 길흉도 그분의 손안에 있다. 생명의 근원을 떠난 사람에게는 인생의 답이 없다. 주 안에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나를 그분 손안에 맡기며 사는 일이다. 내 안에 욕심이 가득하면 하나님을 모실 수도 볼 수도 없다. 신앙은 자기 욕심, 자기 고집, 자기 생각을 죽이고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그저 교회에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는 일이다. 내가 죽어야 한다. 설 죽으..

말에도 색깔을 지니고 있다

말에도 색깔을 지니고 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어느 공간이라도 우리는 항상 말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말투에 따라서 상황과 관계가 악화되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말투는 중요한 순간에서 결정적으로 좌지우지하곤 합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기법으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토스는 신뢰, 호감을 말하고, 파토스는 공감, 감성을 뜻하며, 로고스는 논리와 이성을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상대를 설득하려면 에토스 60%, 파토스 30%, 로고스 10%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먼저 에토스를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