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1 10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7:24)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린도전서7:23-24)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써 사신바 되었습니다. 사람은 아담의 범죄로 그의 후손은 모두 다 마귀에게 팔려 마귀의 소유, 마귀의 권세 아래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값으로 사신 바 되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풀려나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마귀의 종도 아니고, 사망의 종도 아니고, 사람의 종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유가 된 그리스도인은 이제 하나님의 품에 거하고,..

다윗의 자손(막12: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막12:37) 위 구절은 조금 복잡합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불렀으니 주가 그의 자손이 될 수 없다는 말인데요. 그렇다면 이 말은 주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을 반박하기 위한 진술인 셈입니다. ‘주’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칭호 중에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위 구절은 이 사실을 반대하는 걸까요? 마가복음에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드물지 않게 나옵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맹인 거지가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고(10:48), 예루살렘 입성 장면에서도 무리들이 다가오는 다윗의 나라를 찬양했습니다.(11:..

다윗의 발언(막12: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막12:36) 위 구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구약 시편 110:1절을 인용했습니다. 이 구절은 신약에서 가장 흔히 인용된 구약성서라고 합니다. 행 2:34,35절, 고전 15:25절, 히 1:13절이 말하는 올리어진 주님과도 연관됩니다. ‘내 우편’이라는 표현은 사도신경이 말하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에 적용됩니다. 신약성서 기자들은 시편의 이 구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윗이 이 시편에서 실제로 메시아를 생각했을까요? 이를 밝히려면 엄청난 성서 신학적 수고를 해야겠군요.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그걸 감당할..

다시 성전에서(막12: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막12:35)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마지막 일주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루살렘에 처음 들어간 종려주일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무덤에 묻힌 금요일까지입니다. 그 뒤로 일어난 사건들은 훨씬 뒤에 일어난 사건들이 압축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시간적인 정확성을 찾기는 힘듭니다. 어쨌든지 예루살렘 입성 이후의 일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직접 연루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 일들은 대개 성전을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경우에 따라서 성전이라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맥락에서 볼 때 성전 안에서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행하신 일은 ..

잠언 14장 1-15절: 예배와 일상

해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잠언의 대주제가 이 장에서 강조 되고 있습니다. 지혜를 따르는 것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9절(“어리석은 사람은 속죄제사를 우습게 여기지만,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린다”)은 히브리어 원문이 모호합니다. 다수의 성경은 개역개정(“어리석은 사람은 죄를 심상히 여겨도”)처럼 ‘죄 짓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는 뜻으로 번역합니다. 새번역과 NRSV는 ‘속죄제사’를 우습게 여긴다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번역은 달라도 그 의미는 다르지 않습니다. 시편과 잠언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지식이나 지혜가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경외하지 않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멸”(2절)합니다. ..

하나님의 공의인가? 사람의 공의인가?(신 9:1-12)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쉬운 나라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아낙자손이 살고 있습니다. 거인 족속으로 알려진 아낙자손은 맹렬합니다. 더구나 그들이 지은 성벽은 하늘을 찌르듯 높고 견고합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은 파리라고 부를만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 것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셔서 아낙 자손을 무찌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시온의 대로와 같이 만들어 놓으십니다. 눈 앞에 보이는 장벽이 하나님의 손으로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현실에 다가오는 넘사벽은 없습니다.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이 세상이 주는 유혹이고, 사단의 술책입니다. 그러나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가나안의 아낙 자손을 물리치고 승승장구할 때 겸손을 유지할 것을 강조합니..

정체성을 잃은 교회

정체성을 잃은 교회 글쓴이/봉민근 왜 믿음이 필요하며 왜 믿는 것일까? 교회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사는 것일까? 오늘날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여기저기서 새 생명이 태어나고 세상을 떠나갔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병원마다 만원이다. 가서 기다리지 않는 곳이 없다. 화장터에는 쉼 없이 운구행렬이 끊임없이 줄을 잇고 있다. 한번 왔다가는 인생들의 현장들이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삶과 죽음의 순리가 오늘도 쉼 없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는 욕심과 죄로 가득한 인간들이 분수에 넘는 본색을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다. 교도소에는 죄인들이 가득하고 경찰서에는 쉴 틈이 없이 사건 사고로 분주하다. 여기저기서 다급한 삶에 아우성 소리가 요란하..

나이 듦의 지혜

나이 듦의 지혜 한 쥐가 있었습니다. 그 쥐는 음식을 구하는 재주가 뛰어나 많은 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늙어가며 눈도 어두워지고, 행동도 느려져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늙은 쥐가 되었습니다. 다른 쥐들이 비웃으며 수군거렸습니다. "뭐야 이제 늙어서 아무 쓸모가 없잖아? 음식은 뭣 하러 줘! 주지 말자!"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쥐들이 사는 집주인이 세 발 달린 솥에 밥을 해서 돌로 솥뚜껑을 눌러놓고는 잠시 외출했습니다. 쥐들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밥이 탐났지만, 온갖 꾀를 짜내도 밥을 꺼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중 한 쥐가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갔습니다. 바로 늙은 쥐에게 간 것입니다. "그동안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저 솥에 들어 있는 밥을 도저히 꺼낼 방법이 없습..

언약 백성을 위해 목숨 걸고 중보하는 모세.(신 9:13-29)

신 9:13-29 묵상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 스스로 부패하여 우상 숭배하는 언약 백성. 백성의 패역보다 하나님의 인자가 크십니다. 언약 백성의 거듭된 불순종을 회고하는 모세. 그러함에도 인자를 베푸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언약의 땅에서 순종의 길을 가라 강권합니다. 언약 백성을 위해 목숨 걸고 중보하는 모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호에 호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의 예표입니다. 스스로 주인되고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말하나 마음은 떠나있습니다. 주님의 긍휼하심만이 소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