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8 11

이스라엘의 중앙성소(신12:4-14)

이스라엘의 중앙성소(신12:4-14) 본문에서 모세는 참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만 제물을 드리도록 명령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백성들이 각 지파 또는 각 가족 단위로 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는데, 그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 들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 생활을 한 탓이었다. 하자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면 오직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만 예배해야 했다. 그 장소란 훗날 이스라엘의 유일한 중앙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솔로몬 성전)이다(대하3:1). 이러한 예배의 단일화는 이스라엘을 하나로 결속시키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개였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마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태복음17:20) 제자들 앞에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으나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꾸짖어 귀신을 나가게 하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하시면서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옮길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한 분 하나님(4)(막12: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막12:32) 앞의 묵상을 읽고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냐, 하고 생각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군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든지 않든지, 바르게 살든지 못되게 살든지 누구나 똑같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굳이 지금 힘들게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괜찮지 않냐고 말입니다. 이런 생각은 기독교 신앙과 거리가 멉니다. 우선 예수님을 믿는 게 힘들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건 힘든 게 아니라 기쁨입니다. 무거움이 아니라 가벼움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율법은 ..

한 분 하나님(3)(막12: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막12:32) 바로 앞서 두 번의 묵상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뉘앙스로 전달되었을 겁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구원의 우주론적 능력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인간의 악까지 극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제 세 번째 이유를 말씀드려야겠군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한 위격인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 그 성령은 창조의 영이면서, 부활의 영이고, 종말의 영이기도 합니다. 그 영은 오늘도 교회 공동체만이 아니라 온 세계에서 생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기독교가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한 분 하나님(2)(막12: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막12:32) 어제 묵상에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이 적극적인 차원과 소극적인 차원으로 구별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구별이라기보다 변증법적 긴장관계라고 보는 게 좋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적극적인 차원에서 구원 경험을 하지만, 동시에 소극적이 부분도 열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구원 경험을 진실하게 한 사람은 당연히 소극적인 부분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바로 한 분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걸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분이 창조자라는 사실입니다. 물리학자들의 설명에 따라면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을 비롯해서 우주 전체가 하나의 점에서 시작되..

잠언 11장: 바르고 의롭고 선하게

해설: 11장에도 여러 가지 주제의 잠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경제 정의와 관계된 말씀이 돋보입니다. 먼저, 돈 버는 과정에서 정의로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속이는 저울은 주님께서 미워하셔도, 정확한 저울추는 주님께서 기뻐하신다”(1절)는 말은 돈 버는 과정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관심 하신다는 뜻입니다. “속이는 저울”은 부정한 거래를 통해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조급한 사람들은 “속임수”를 쓰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기를 힘씁니다(3절). 의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정직하게 부지런히 일하여 부를 이룹니다(16절). 경제 정의를 위해 힘쓰는 이유는 자신 뿐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일삼는 사람들은 이웃을 해치고 ..

지켜야 할 것과 미워할 것.(신 7:12-2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법도와 규례를 지키면 인애를 베풀고 언약을 지키고 자손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법도와 규례에 대한 하나님의 강조는 계속 반복됩니다. 그만큼 세상의 유혹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규례와 법도를 따르기 싫어합니다. 자율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부패한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복하여 규례와 법도를 강조합니다. 규례와 법도를 지킬 것을 말씀하시면서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인 이방인과 가증한 우상숭배에 대한 담대한 자세를 가질 것을 명령합니다. 이집트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을 쫓아낼 것을 명령합니다. 물론 지혜롭게 행할 것을 주문합니다. 한번에 다 하지 말고 차례로 준비하여 네 안에 있는 가증한 ..

말씀과 은혜, 그리고 믿음과 순종

말씀과 은혜, 그리고 믿음과 순종 글쓴이/봉민근 우리는 은혜라는 말을 꽤나 좋아한다. 말씀을 듣고 가까이하는 자가 은혜받은 자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은혜받은 자의 태도라고 할 수가 없다. 은혜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말씀을 듣고 감동받았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씀을 깨달았다고 해서 모두가 은혜받은 자도 아니다. 행함이 없는 것은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게 한다. 은혜받은 사람은 삶이 변화되고 순종하는 사람이다. 말씀과 순종은 손과 발처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믿음은 언제나 순종과 함께 일한다. 신앙생활에서 순종 없는 믿음은 존재할 수가 없다. 날마다 기도해도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는 기도는 헛수고다. 불순종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응답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아브라함이 ..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소울 서퍼 (Soul Surfer)'는 2011년에 개봉된 영화로 프로 서퍼 '베서니 해밀턴'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녀는 열세 살에 하와이주 서핑대회에서 1위로 예선을 통과하며 서핑에 천부적 재능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다 한가운데서 상어의 공격을 받고 한쪽 팔을 잃었으며 혈액의 60%가 빠져나가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의사는 그녀를 '살아있는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연일 언론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녀의 그런 현실이 힘들기만 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으로 다시 서핑을 시작했지만,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녀는 태국 쓰나미 현장에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

거룩한 백성, 거룩한 삶 (신 8:1-10)

신 8:1-10 묵상입니다. 불순종으로 광야 길을 가야 했던 언약 백성. 하나님께서 그 광야 길을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성민을 위한 연단의 기회로 삼으십니다. 광야에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과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성민으로서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약속의 땅에서 주의 성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감사함으로 누리며 하나님의 찬송이 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나의 생명의 주, 구속의 주가 되십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나누게 하소서! 말씀과 기도로 구별된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