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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시편85: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시편85:8) 하나님은 성도들,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백성들에게 화평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화평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샬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샬롬의 은혜를 펼쳐 주시고, 우리가 샬롬을 누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고, 우리도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곤 합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시선, 우리의 발이 죄악으로 돌아가고, 우상숭배로 돌아가고, 방황으로 돌아가고, 염려로 돌아가고, 허망한 것으로 돌아갑니다. 그런 것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화평에 거하는 길이고, 계속해서 화평을..

종말의 때와 징조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라?'(막13:4) 제자들의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종말의 시점이며, 둘째는 종말의 징조입니다.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종말은 어느 때일까요?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그 종말이 속히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그들이 재산을 팔아서 공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종말이 자기들의 세대에 온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재산을 소유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1992년 10월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주장한 다미선교회 추종자들은 사회생활을 중단했습니다. 종말의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종말의 시기를 알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

감람산에서(막13:3)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막13:3) 막 13장은 4장의 비유 말씀을 제외하면 마가복음에서 가장 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4장이 가장 길고 그 다음이 13장인 셈입니다. 4장은 주로 땅과 씨를 소재로 한 비유인 반면에 13장은 종말을 주제로 한 말씀입니다. 종말은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종말론적입니다. 구원을 생각해보세요. 지금 우리는 아직 완전하게 구원을 받은 게 아닙니다. 그 구원이 완료된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병들고 괴로워하고 결국 죽습니다. 구원을 영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현재가 아니라 종말의 사건입니다. 교회도 역시 종말론적 메시야 공동체입니다. 모든 것의..

성전 파괴 예고(2)(막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막13:2) 가끔 저에게 공개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의 하나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닌 게 있다는 말이냐, 하는 겁니다. 성경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 신자들에게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님에게 직접 소급될 수 없는 말씀들이 없지 않습니다. 위 구절도 역시 그 중의 하나입니다. 위 구절은 기원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파멸을 전제합니다. 로마 식민 통치 하에서 이스라엘의 열심당들은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그런 이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로마는 문화와 종교적..

죄의 경향성과 확장성을 경계하라 (신131-18)

이성이 부조리하다고 여겼던 실존주의자들은 존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체험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신앙의 영역에서 체험주의를 강조하였고 각종 기적과 신유와 입신과 신비한 체험을 소비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가나안의 풍습입니다. 각종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는 몽상가와 자칭 선지자들이 난무하였습니다. 예언과 기적은 사람들을 미혹하기에 안성 맞춤입니다. 가나안에 즐비한 우상숭배자들의 모습에 현혹되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미혹하여 함께 하자고 할 때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전멸하라고 합니다. 더구나 가까운 가족과 친척과 이웃이 우상숭배의 자리로 유혹할 때 갈등하지 말고 심판할 것을 말씀합니다. 한 성읍이 우상숭배에 빠져있으면 점령하고 심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소유를 불태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성읍은..

내 안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 안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글쓴이/봉민근 믿음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하나님은 누구신가? 나는 날마다 왜 기도하며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단지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공급자로 머무르고 있지는 않은가? 기도하는 목적도 이유도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닌가? 내가 하루를 살면서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살고 있는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가장 신경을 쓰게 하는가? 사람이 살면서 가장 아끼고 많이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신이 섬기는 신이라 했다. 나는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가 아니요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과 수단으로 삼는 믿음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인생은 단막극이 아닙니다

인생은 단막극이 아닙니다 연극에서 한 장면이 끝나면 갑자기 불이 꺼집니다. 두터운 커튼이 내려오고 무대가 캄캄해집니다. 커튼 뒤에서 드르륵 바퀴 굴리는 소리, 뭔가 뚝딱거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당황하지 않습니다. 저 커튼 뒤에는 방금 본 장면과는 다른 장면이 무대 위에 설정되고 있음을 관객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커튼이 올라가고 불이 환하게 들어오면 새로운 장면이 열리고 무대에는 다른 인물이 나옵니다. 전 장면에서 보았던 그 배우가 다른 옷을 입고 다른 가발을 쓰고 다른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웃고 떠들기도 합니다. 단막극은 장면 하나로 다양한 애환을 압축해 전개하지만, 연극은 그 장면이 훨씬 다양합니다. 소망이 없어 보이는 우울한 장..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 (신 14:1-21)

신 14:1-21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로 구원받은 성도들. 하나님의 성민이요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구별되어야 합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입니다(살전4:3). 이방 풍습을 멀리하고 식생활도 구별되어야. 마음에 할례를 받고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고 살아감이 신비입니다. 그 부르심의 은혜에 합당한 일상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이웃을 섬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