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6 11

축복(그리심산)과 저주(에발산)(신11:26-32)

축복(그리심산)과 저주(에발산)(신11:26-32) 본문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입성 후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는 의식을 행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가나안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는 세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이 산들이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산으로 각기 선택된 이유는, 아마도 옛날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한 곳이 세겜 땅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창12:6-7).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저주 아니면 축복의 중간에 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본문 말씀은 각자 자신이 설 자리를 분명히 하라는 교훈이기도 ..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14:13-14)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뛰고, 열심히 도전하는 것도 힘들지만 가만히, 잠잠히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바로 "내가" 해야 되고, 바로 "내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꼭 패배주의자, 루저,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자신의 인생과 자연의 원리 중에도 주의깊게 생각해보면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으로 움직이고, 우리의 힘으로 있..

새벽입니다

새벽입니다. 이 새벽의 신비가 또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어제의 새벽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내가 누리는 유일한 새벽입니다. 이 새벽을 품을 수 있음은 내가 살아있음의 증거입니다. 아니 새벽이 나를 품고 있습니다 이 감동을 얼마나 누리며 살아갈지 하나님께 물어야겠습니다. 25년 전의 새벽, 기억하기조차 힘든 새벽입니다. 사랑하는 사랑의 마지막 호흡을 지켜보며 시간의 멈춤을 경험했던 암흑의 새벽입니다. 어쩌면 나는 그 새벽에 갇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 새벽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했고 삶의 의미를 더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연약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유산을 이어가는 우리가 되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저께 공원묘원에 다녀왔습니다. ..

쉐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막12:29) ‘쉐마’는 ‘들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는 물음 앞에서 신명기 6:4,5절을 인용했습니다. 그 구절의 시작이 쉐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말은 제의적인 모임을 시작하는 부름말이라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바꾸면 ‘예배의부름’ 정도가 되겠군요. 예수님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아침저녁으로 이 본문을 낭송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들어야 할 말씀은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니라.”입니다. 이 말씀을 들어야 할 이유는 그것이 바로 그들을 살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유일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사물도, 사상도, 행위도 완전히 새롭거나 유..

첫 계명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막12:28) 예수님이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뒤로 계속해서 논쟁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막 11:27절 이하에서는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소란을 피우느냐고 따져 물었고, 막 12:13절 이하에서는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흠집을 내려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게 옳으냐 하고 물었으며, 막 12:18절에서는 사두개인들이 한 명의 여자와 결혼한 여러 형제들의 문제로 예수님을 곤란한 입장에 빠뜨리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세 번에 걸친 이야기는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 이들의 이야기인 반면에 이제 네 번..

산 자의 하나님(4)(막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막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이 구절이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만 삶이, 참된 삶이, 영원한 삶이, 부활의 삶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인 부활은 독립적으로 어떤 것을 말한다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서만 그 의미가 살아난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나무도, 강과 산도, 심지어 바위도 생명을 얻습니다. 지구의 생명이 DNA로부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말이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지 아닌지에 달..

잠언 9장: 왕비와 음녀

해설: 9장은 1장부터 이어진 서언부의 종결부입니다. 10장부터는 솔로몬의 잠언이 시작됩니다. 1절부터 6절까지는 지혜의 초청을 전합니다. 지혜는, 궁궐을 을 잘 짓고 좋은 음식을 장만한 후에 시녀들을 내보내어 사람들을 초청하는 왕비와 같습니다. 왕궁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 큰 즐거움과 힘을 얻는 것처럼, 지혜와 더불어 살면 명철의 길을 걷게 되며 생명을 얻습니다. 7절부터 9절까지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대비시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를 달게 받고, 어리석은 사람은 훈계를 거부할 뿐 아니라 훈계를 준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더욱 지혜로워지고, 어리석은 사람은 더욱 어리석어집니다. 10-12절까지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를 따르는 것이 복된 ..

눈앞의 이익에 마음 뺏기지 않으면… [2024. 1. 16. 화]

눈앞의 이익에 마음 뺏기지 않으면…(창세기 13:8-9, 14-15)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애굽을 다녀온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벧엘 근처에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의 목초지가 이미 두 집안의 동거를 용납하지 못하게 되어 종들이 다투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넓은 땅이 있으니 먼저 선택하여 좋은 땅을 찾아 ..

부족함에 은혜

부족함에 은혜 글쓴이/봉민근 무엇이든 잘하고 싶을 것이다.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도 있을 것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잘 믿고 싶을 것이다. 믿음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을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기도의 사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고 방해하는 사람들과 사탄의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생각과 세상의 갈 길은 언제나 두 갈래로 갈라져서 나를 거스른다. 믿음은 이 모든 것을 이길 힘을 준다. 믿음은 무엇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게 해 준다. 나 자신이 완전하다면 더..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이요 은혜입니다.(신 7:1-11)

신 7:1-11 묵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주권적으로 택하시고 자기 기업으로 삼으시고 권능으로 함께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자기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그곳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 하십니다. 이방 민족과 철저히 구별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공의와 자비로 다스리시며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이 마땅합니다. 나를 택하여 자녀 삼으심은 오직 은혜입니다. 그 부르심의 은혜에 합당하게 살게 하소서! 말씀과 기도로 구별된 일상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