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잠언 16장: 믿음과 겸손

새벽지기1 2024. 1. 25. 06:06

해설:

16장부터 22장 16절까지는 왕실에서 형성된 잠언들이 많이 나옵니다. 10장부터 15장에 수록된 잠언들과 성격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장에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통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모든 것이 사람 하기 나름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인간은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생각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일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겸손히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습니다(1절, 3절, 9절).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맞게 만드셨고(4절), 사람들을 그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5-7절). 

 

아울러 지도자의 태도에 대한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왕이 내리는 판결은 하나님의 판결이니, 판결할 때에 그릇된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10절)는 말은 “왕은 언제나 옳다”는 뜻이 아니라 “왕은 자신의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왕권은 강한 권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의로만 왕위가 굳게 될 수 있기 때문”(12절)입니다. 그러기 위해 왕은 “공의로운 말”과 “올바른 말”(13절)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왕의 기쁨은 곧 백성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15절).

 

이 장의 후반부에서는 겸손의 덕에 대한 말씀이 강조 됩니다. 교만은 파멸로 가는 길이고, 겸손은 높임을 받는 길입니다(18절). 거만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물질적으로 이득이 된다 해도 겸손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마음을 낮추는 편이 더 좋습니다(19절). 겸손한 사람은 말씀을 따라 조심하며 삽니다(20절). 그런 사람은 말이 지혜롭고 설득력이 있습니다(21절, 23절). 그런 사람의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24절). 반면, 교만한 사람은 비뚤어진 말로 다툼을 일으키고, 불화를 조장합니다(27-28절). 

 

묵상: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도 인간의 노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알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어떤 초월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삼국지에서 유래했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같은 금언이 그 예입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행한 후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은 인간사를 주관하는 초월적인 힘이 있다는 믿음을 반영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정한수를 떠 놓고 빌기도 했고, 점성술에 의지하기도 했으며, 이도저도 안 되면 팔자소관으로 치부하고 체념 하기도 했습니다.

 

성서는 그 초월적인 힘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원리나 힘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생각하고 뜻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의 뜻을 찾습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 복된 길이며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자신의 존재를 맡기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복된 길을 가며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칩니다.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니, 의로운 길을 걸어야 그것을 얻는다”(31절)는 말씀은 노인 공경에 대한 교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노인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존경 받는 노인이 되라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의 말씀을 따라 의로운 길을 꾸준히 걸어가면 노인이 되었을 때 영화로운 면류관을 쓴 것처럼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흔한 유행가의 가사를 인용한다면, 의로운 길을 가는 사람은 늙을수록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