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잠언 14장 16-35절: 편 드시는 하나님

새벽지기1 2024. 1. 23. 03:32

해설:

14장의 후반부에도 다양한 격언들이 이어집니다. 그 중에 몇 가지 두드러지는 주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조급함 또는 경솔함에 대한 격언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매사에 신중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성급하고 경솔합니다. “자신만만함”(16절, 개역개정 “방자함”) 때문인데,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가장 큰 어리석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미가 급하여 일을 그르치곤 합니다(17절, 29절). 지혜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침착하고 신중하여 분별력이 있습니다.

 

둘째는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이웃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부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것이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20절). 가난하다고 하여 이웃을 업신 여기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지혜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부자(사회적 강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사회적 약자)를 가까이 하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21절). 그런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높이는 일입니다(31절). 이 말씀은 사회적 약자에게 행한 일이 곧 당신을 위한 일이라는 예수님의 비유(마 25:31-46)를 생각나게 합니다. 

 

셋째는 정치 권력에 대한 말씀입니다. “백성이 많은 것”(28절)은 나라가 평안하고 번영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왕의 영광입니다. 반면 “백성이 적은 것”은 정치 경제적으로 쇠락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나라를 그렇게 만드는 정치 지도자는 몰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라면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섬겨야 합니다(31절). 정치 지도자는 “정의는 나라를 높이지만, 죄는 민족을 욕되게 한다”(34절)는 신념을 따라 정의와 공의로 국민을 위해 섬겨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에게는 슬기로운 사람들이 몰려 들게 되어 있습니다(35절). 

 

묵상: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와 정치 권력에 대한 격언들이 서로 섞여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율법과 예언의 말씀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회적 약자들을 편 드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십니다. 모두를 사랑하시기에 현실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억압 받는 사람들, 낙오한 사람들 편을 드십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자신의 몫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창조하셨는데, 인간의 죄악이 누적되어 세상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가 된 데에는 개인의 잘못보다 왜곡된 사회 제도와 구조의 잘못이 더 많습니다.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거나 혐오하거나 억압하고 사회적 강자들에게 줄을 대려 합니다. 부자들의 성공을 칭송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게으름을 비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일입니다. 죄악의 현실을 은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 보고 그들의 형편이 나아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는 자신의 직업 현장에서 혹은 사회에서 활동하는 동안에 시선을 항상 약자들에게 향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런 태도로 살 때, 어떤 힘(정치 권력, 행정 권력, 돈의 힘, 유명세의 힘 등)이 주어지면 그것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늘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며 산 사람에게 어떤 힘이 주어지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편 드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땅에서 활동하실 때 편 드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편 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