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잠언의 대주제가 이 장에서 강조 되고 있습니다. 지혜를 따르는 것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9절(“어리석은 사람은 속죄제사를 우습게 여기지만,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린다”)은 히브리어 원문이 모호합니다. 다수의 성경은 개역개정(“어리석은 사람은 죄를 심상히 여겨도”)처럼 ‘죄 짓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는 뜻으로 번역합니다. 새번역과 NRSV는 ‘속죄제사’를 우습게 여긴다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번역은 달라도 그 의미는 다르지 않습니다.
시편과 잠언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지식이나 지혜가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경외하지 않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멸”(2절)합니다. 주님을 경멸하니 지혜를 알지 못하고, 지혜를 알지 못하니 죄악을 일삼게 됩니다. 그들은 죄 짓는 것을 하찮케 여기고, 속죄제사를 가볍게 여깁니다. 반면, 정직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중하게 여기고 정성을 다하여 속죄제사를 드립니다. 바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들이 주님을 경외한다는 증거입니다(2절).
묵상:
9절의 의미가 모호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죄를 우습게 여긴다”고 번역할 수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은 속죄제사를 우습게 여긴다”고 번역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생각 거리를 제시해 줍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의와 죄, 선과 악, 거룩과 부정에 대한 태도를 결정합니다. 의와 선과 거룩을 택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경외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죄와 악과 부정을 택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그분을 경멸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죄에 대해 예민해지고, 그래서 제사에 정성을 다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에 대해 무감각 해지고, 그래서 제사를 불필요하게 여깁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와 삶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참된 예배는 신실하고 의롭고 거룩한 삶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신실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려는 마음이 있다면, 예배에 더욱 정성을 다하게 됩니다. 예배가 깊어지면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삶에 정직하고 진실할 때 예배는 더욱 깊어집니다. 예배에는 열심인데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거짓과 불의와 부정에 무심해질 수가 없습니다. 참된 예배는 우리의 영혼을 맑고 예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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