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임마누엘 (마태복음 1:18~25)

새벽지기1 2024. 1. 25. 06:22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고 인사합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메시 크리스마스(Messy Christmas)’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뒤죽박죽된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에 질투를 느낀 헤롯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대학살 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 누이신 곳은 동물의 먹이통이었습니다. 동물의 우리에 있는 먹이통에 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처녀가 아이를 낳은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초자연적인 기적이며, 사람들을 매우 당황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요셉과 마리아의 반응을 소개할 뿐입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자신의 몸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잉태된다는 엄청난 말씀을 듣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수용했습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마리아에게서 떠나갔습니다”(눅 1:38).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담대하고, 순종적인 믿음의 태도입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신 말씀에 우리가 “아멘”으로 응답할 때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수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 마리아의 몸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마리아는 거절할 수도, 회피할 수도, 도망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메시아의 출생이라고 하지만, 처녀가 아이를 갖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믿어 주지 않는다면 사회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정혼자인 요셉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엄청난 상처와 아픔을 겪게 되는 위험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믿음으로 자신을 드림으로 성탄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세 가지 놀라운 사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크리스마스에는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고, 둘째, 처녀가 아이를 낳은 것이고, 셋째, 마리아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는 순결했고, 하나님 앞에 정당했고,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를 통해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습니까? 요셉은 더 큰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자신과 정혼한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세 가지 믿기 어려운 사실 때문에 요셉은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첫째, 마리아의 말을 과연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둘째, 성령으로 잉태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셋째, 이 두 가지를 믿어도 왜 나와 마리아에게 이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마리아는 스스로 결백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일어난 일을 확신할 수 있었겠지만, 요셉은 더 큰 믿음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천사의 계시를 통해 요셉의 믿음을 도와줍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말씀하심으로 마리아를 받아들이고, 보호하고, 의롭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에게 이 상황을 주신 이유
하나님이 요셉과 마리아에게 이 상황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시에 ‘정혼관계’라는 독특한 문화를 이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결혼 문화에는 신랑 신부가 실제적인 부부로 함께 살기 전에 ‘정혼’이라고 부르는 1년을 보냅니다. 이 시대의 약혼과 결혼의 중간단계입니다. <우리말성경>에서는 ‘약혼’이라고 번역했지만, 이 시대 약혼보다 훨씬 강하고,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지는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그 상태였습니다. 이 기간에는 서로 남편과 아내로 부를 수 있고, 이 기간에 이루어지는 파혼은 이혼과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만일 정혼 상태에서 자녀를 가지게 되면 적법하게 태어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혼상태에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처녀에게서 잉태되게 하시고, 동시에 적법한 법적인 보호를 받는 자녀의 신분을 가진 상태에서 태어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다윗의 후손인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나도록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준비하신 메시아의 출생을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실 때 오랫동안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어디로, 어느 민족, 어느 족속, 누구를 육신의 부모로 태어나게 하실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준비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부터 시작해서 구약의 모든 역사가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가 어느 나라와 민족, 족속과 가문, 누구를 통하여 어느 때에 출생할지를 예언하는 역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오실 메시아를 예비하는 역사로써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모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요셉에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천사가 요셉에게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주께서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를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22~23절). 
이 말씀은 크리스마스가 베들레헴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이후 자라면서 메시아로 인정받은 게 아닙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기 오래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한 대로 이 땅에 오시되, 처녀가 잉태하는 과정을 통하여 그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사야> 7장 14절을 통해 주신 예언의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고 그를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사 7:14). 
여기서 ‘친히’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이 친히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능함, 인간의 죄악, 인간의 거부, 인간의 반역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인간이 구원을 갈망하지 않을지라도, 거부할지라도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는 은혜입니다. 무엇을 이루신다는 것입니까? 함께 하시는 역사, 임마누엘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분리되고, 단절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하나님 나라 밖에 사는 이들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부요하신 은혜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랑 밖으로 뛰쳐나간 인간과 함께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셨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막힌 담을 허무시며 다시 함께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임마누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마리아 동정녀에게서 잉태되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위인, 어떤 종교 지도자가 예언을 통해서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어느 한두 사람의 예언이 아니라 수천 년 역사 속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직전과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인 예언만 2백 가지가 넘습니다. 그것도 서로 다른 시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예언된 출생으로 오신 이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지만,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던 분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심의 의미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 동정녀 탄생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인간 본성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인류는 구원자를 스스로 낳을 수 없고, 인간의 교육이나 과학 문명, 어떤 노력으로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온 인류를 불행과 죽음, 타락 가운데 처하게 한 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는 인류에게서 나올 수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친히 주어지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듯 초자연적인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혜의 역사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동정녀 탄생은 인간의 본성에는 희망이 없고,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의미입니다. 
둘째, 동정녀 탄생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죄가 없는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분임을 나타냅니다.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처하게 된 이유는 아담 안에서 타락한 본성, 죄책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담 안에서 이루어진 본성의 타락, 원죄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우리 의로움의 뿌리가 되시고, 우리의 거룩함의 근원이 될 분이 필요합니다. 죄가 없는 분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 있어야 합니다. 단지 동정녀에게서 잉태되었기 때문에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여인에게도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정녀로부터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기에 그분은 죄가 없으신 완전하신 의로우신 인성을 입으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인류는 두 사람뿐입니다. 첫째 아담에 속했는가,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는가? 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습니다. 동정녀 탄생은 둘째 아담, 죄가 없는 의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동정녀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이 완전히 연합된 메시아이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 성자를 인간으로 세상에 보내실 때 성령으로 잉태됨으로 인간의 죄가 오염되지 않도록 하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탁월함을 보여서 탁월한 종교를 만든 게 아닙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시간과 역사, 공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 일부가 되심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과 다시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임마누엘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신 날
 
크리스마스의 신비, 하나님의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처녀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이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임마누엘이신 그분은 환영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불신과 반역으로 행하는 모든 이들을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먼저 찾아오셨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셨고, 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버리고,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함께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날이 크리스마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너무 힘들고, 외롭고, 삶을 포기하고 싶을지라도 영원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 안에서는 포기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 안에서는 버려질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 안에서는 버림받은 영혼이 없습니다. 이것이 성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깊이 느끼고, 체험하는 복된 성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게 하려고 예수님이 메시 크리스마스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은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 그분께 드린 선물이 동물의 먹이통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드린 선물은 십자가였습니다. 세상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분의 오심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로 구속하시고, 부활하셨기에 우리가 새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임마누엘 되신 예수님을 깊이 찬양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복된 성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