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7 16

욕망의 깊이

욕망의 깊이 어느 마을에 부유한 백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백작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중 주방에서 그의 요리사가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만약 내게 5파운드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백작은 잠시 생각하다 주방 문을 열고 선뜻 5파운드를 요리사에게 건넸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선물을 받은 요리사는 백작에게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백작이 멀리 밖으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요리사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왜 내가 바보같이 10파운드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모든 강물을 모아도 바다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의 욕망도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상에도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

회복

회복 줄어든 힘의 연약함에 맞추어 삶의 걸음걸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순간을 음미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회복시키는 생명의 샘인 그리스도의 임재를 깊이 들이마시는 것이다. 회복하고 건강해질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동정심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다가오시듯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내어 다가가는 것이다. -폴 스티븐스의 [영혼의 친구, 부부] 중에서-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룻기3: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룻기3:10) 룻은 이미 죽은 남편의 친척인 보아스라고 하는 사람의 아내가 되기로 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보아스가 룻에게 한 말입니다. 룻은 젊은 미망인으로 젊은 남자를 새 남편으로 물색한 것이 아니라 죽은 남편의 가문을 이어가려는 룻의 선택에 대하여 보아스는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습니다. 룻기에도 여호와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행하심은 숨겨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는 신실하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인정하고, 따르는 신실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삶의 방..

150 - 세례 (골2:12)

[기도/말씀]​ 주님, 어린 양의 보혈로 사탄의 정죄에서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양자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2) [배경/해석] 우리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 육의 몸(죄성)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할례의 의미와 같이 옛사람, 육적인 생활을 360도 완전하게 깨끗하게 남김없이 잘라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 믿기전의 옛사람의 할례는 건물을 ​해체하고 다시 짓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옛 것의 일부를 남겨놓는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의 생각을 해체하고, 습관을 완전히 해..

지혜로운 청지기로 살아감이 본분입니다.(전 5:9-20)

전 5:9-20 묵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함이 행복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재물, 권세, 명예는 무익합니다. 지혜로운 청지기로 살아감이 본분입니다. 세상에 부요한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올무가 되면 안 됩니다. 세상 것들을 사랑하면 그것이 주인 됩니다. 믿음과 선한 일에 부요함이 생명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있는 자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감이 마땅합니다. 일상이 예배가 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 하나님의 분복을 누리며 나누는 기쁨입니다. 부르심의 은혜에 합당한 오늘 되게 하소서!

혼합주의는 하나님을 수단화합니다.(전 5:9-20)

전 5:9-20 묵상입니다. 하나님과 맘몬을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가 대세입니다. 혼합주의는 하나님을 수단화합니다. 혼합주의로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는 성실히 자기 일을 하며 자족하며 즐겁게 삽니다. 맘몬을 섬기는 자는 불평을 달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