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360

하나님에 말씀의 무게

하나님에 말씀의 무게      글쓴이/봉민근 세상을 살면서 늘 부담이 되는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에서 악한 것이 나오고악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죄가 나를 지배하며 결국 그 죄가 자신의 왕이 되어 인생을 끌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양심과 생각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주변 환경과 가까운 사람들을 통하여 깨달음을 주시지만 우리는 눈과 귀가 어두워져서 그것을 보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고 있다. 누가 죄를  지으며 살고 싶겠는가? 누가 하나님을 거스르고 싶겠는가? 우리는 죄를 멀리하려는 조그마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늘 사탄 마귀 탓만 한다. 사탄아 물러가..

하나님은 세상을 공의와 인자로 다스리십니다.(시 104:1-18)

시 104:1-18 묵상입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권능의 하나님.모든 피조물을 창조 질서대로 섭리하십니다.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라 촉구합니다 모든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모든 피조물 안에 창조의 목적이 있습니다.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이 존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공의와 인자로 다스리십니다.공의의 심판 중에서도 긍휼을 베푸십니다.사람은 선한 청지기로 살아감이 마땅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의 피조물 됨을 알며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선한 길을 가게 하소서!정직한 예배자, 선한 이웃 되게 하소서!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지혜 (시 104:1-18)

시 104:1-18 묵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지혜가 놀랍고 오묘합니다. 피조물 중에서 특히 물을 다스리시는 지혜는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과 풍요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 방식과 질서와 보존 속에 피조물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 이유가 되는 축복이 충만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신30: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네게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네게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신명기30:6,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람에 의해서 몸에 흔적을 남기는 할례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프시는 할례 즉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행하시는 할례가 진짜 할례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로마서에서 인용하여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2:28)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행하시는 마음의 할례가 진짜 할례이고, 신약성경으로 말하면..

마가복음 후기(9)(막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복음은 사람들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를 말입니다. 결단에 따라서 그의 운명도 달라집니다. 받아들인 사람은 구원을 얻겠지만, 거부한 사람은 정죄를 받습니다. 이를 도식화하면 ‘예수 구원, 불신 멸망’입니다. 이런 도식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안티-기독교 세력으로부터 공격당할만한 도식이기도 합니다. 이 도식이 기독교 패권주의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이용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고 자기 밖의 세계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도식에 덧붙여 칼뱅의 이중예정론을 전가의 보도로 여깁니다. 하나..

마가복음 후기(8)(막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부활 생명은 종말에 완성되지만 지금 여기서 이미 은폐의 방식으로 시작되었다는 어제 묵상의 마지막 대목을 오늘 보충하겠습니다. 이런 신학개념들이 이해되지 않으면 기독교 영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기독교 영성의 깊이를 잘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포즈를 취하거나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은 이들도 많습니다. 이런 습관은 빨리 벗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종말은 우리에게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직 죽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 종말이 와야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듯이 부활 생명을 확실하게 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부활 생명, 즉 종말론적 구원은 분명히 미래의 사건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이런 미래에만 자신을 걸어..

마가복음 후기(7)(막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꾸짖으신 부활의 주님은 다시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십니다. 세상으로 나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이런 명령을 따르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명령을 따르려면 먼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겠지요. 이 명령은 아직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제자들에게 내리신 게 아니라 앞으로 믿음을 갖게 될 제자들에게 내리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다녀야할 ‘온 천하’는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 세상은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세상은 악합니다. 그 악을 단순히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부도..

동쪽으로만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 (창11:1-9)

해설: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다시 인구가 번성한 후에 일어난 이야기 하나가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전반부(1-11장)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아직 언어가 하나일 때(1절)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시날 평야에 자리를 잡습니다(2절). 2절의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는 오역에 가깝습니다. 개역개정(“동방으로 옮기다가”)의 번역이 맞습니다. 창세기에서 “동쪽으로 가다”라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건축 기술을 발전시켜 도시를 세웁니다(3절). 그들은 또한 도시 중심에 거대한 탑을 쌓습니다. 중동 지방에서 발견된 ‘지구라트’ 식의 탑이었을 것입니다. 그 탑을 세우려는 목적은 통치력을 강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4절). “하늘에 닿게 하자”는 말은 그들 스스로 하나..

믿음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

믿음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       글쓴이/봉민근믿음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인위적이고 억지로 노력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을 보라.그들의 믿음의 한계는 절망 가운데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잘 나타났다.사람의 의지력은 믿을 것이 못된다.자신의 신념이 믿음을 지켜 주지 못한다.인간은 조그만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변덕을 부릴 수가 있다.내가 믿음 좋다고 장담해서도 안 된다.베드로처럼 넘어지고 세상권력이나 물질에무릎 꿇기 쉬운 것이 우리 인간의 연약한 믿음이다.그런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깨닫게 가르쳐 주시고 믿음을 회복케 하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다.날마다 기도해야 할 이유는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다.성령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도 나 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