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2 15

신앙의 최소한은 인격이다!(창37:29-36)

신앙의 최소한은 인격이다!(창 37:29-36) 본문은 요셉 형들부터 요셉이 짐승에게 잡혀 먹혔다는 말을 듣고 심히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야곱의 모습을 담은 내용이다. 본문에는 두 가지 주목할 내용이 들어 있다. 첫째, 요셉의 형들의 악한 태도다. 아무리 요셉이 미워도 거짓으로 요셉의 피 묻은 옷을 가져대 부모를 속이고 가슴을 아프게 할 수 있는지 이는 인륜을 저버린 행위였다는 것이다. 둘째, 야곱이 인과응보다. 즉, 요셉 형들이 거짓된 보고는 이전에 야곱 자신이 아비 이삭을 속여 형의 장자권을 탈취한 사건(27장)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 특히,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반추해 봐야 한다. 야곱의 집안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믿음의 가정이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요셉의 형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가복음9:45, 47) 예수님이 이렇게 과격하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그렇지, 예수님이 어떻게 발을 찍어 잘라 버리고 눈을 빼라고까지 하실까하고 예수님은 피도, 눈물도, 긍휼도, 사랑도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범죄할 때마다 정말 발을 잘라 버리고, 눈을 빼 버리라는 것이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진짜 의도라면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가르..

놀라움 (2)(막 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인문학적 성서공부 강의안 중에서 일부를 여기에 게재합니다. 칼 바르트는 신학적 실존을 바로 이런 두려움, 즉 놀라움에서 찾았다. 그의 글을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누구나 신학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학에서 손을 떼고 편견 없이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가 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놀라움의 경험이 솟아올라서 더 이상 상실된 상태에 있지 않고 계속 강건해져야 한다. 얼마동안 놀라움을 경험했고 지금은 아무 놀라움도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 놀라움의 경험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욱 곤란하다. 이러한 놀라움의 경험이 신학자에게 전적으로 낯선 것(..

놀라움 (1) (막 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녀가 일어나서 걷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반복해서 놀랐다고 하는군요. 놀라움은 성서 전체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복음서만이 아니라 구약성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전승에 대한 공부의 한 대목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이 공부는 오늘 저녁에 있을 서울오프 모임을 위해서 준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가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실이 이 대목에서 관건이다. 개역은 “경외한다.”고 했으며, 루터는 “두려워한다.”고 번역했다. 성서 언어가 가리키고 있는 경외, 또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일은 고대인들의 언어인 ‘루아흐..

열두 살의 소녀(막 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죽었다고 생각되던 소녀가 “달리다굼!”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서 걸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질문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기본적으로 질문을 그 바탕에 놓는다는 점에서는 필요하지만, 본문의 중심이 거기에 놓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 중심이 무엇인가는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소녀의 나이가 열두 살이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하지요. 이 소녀의 생명이 아주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던 예수님이 잠시 지체하게 된 이유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여인이 그 병..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2022.11.22, 화요일)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창세기 39:9-10). 보디발의 집 총무로 모든 일을 다 맡아 해야 했던 요셉은 일의 성과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아울러 젊고 이방인이었기에 많은 노예들의 책임자가 되었을 때 동료 노예들의 시기 질투나 인간관계의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런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요셉은 훌륭하게 직장 생활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아내가 날마다 동침하기를 청하며 유혹했습니다. 그 때마다 요셉은 ..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사람 (2022.11.21, 월요일)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린도후서 2:14-16).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면 식욕이 생깁니다. 그러나 음식이 상해 있으면 금방 역겨움을 느낍니다. 이 원리는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살려는 사람들은 뭐 그리 대단한 지위나 명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일터에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향기를 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사..

잠언 23장: 잠언의 성격

해설: 이 장에는 열세 개의 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섯번째 잠언은 분별 없이 대접 받지 말라 합니다(1-3절). 일곱번째는 물질적인 부를 목적 삼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4-5절). 여덟번째는 인색한 사람을 조심하라는 가르침입니다(6-8절). 아홉번째는 미련한 사람에게 조언하지 말라는 것이고(9절), 열번째는 힘 없는 사람의 재산을 갈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10-11절). 열한번째는 훈계를 수용하라는 것이고(12절), 열두번째는 자녀에 대한 징계를 아끼지 말라는 것입니다(13-14절). 13장 24절에서도 자녀를 매질하라는 가르침이 나오는데, 이 가르침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열세번째는 자녀가 지혜롭기를 바라는 부모..

공감

공감 “방법은 권투다. 우리는 양손에 논리와 공감. 이 두 개의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올라야 한다. 논리 없는 공감은 흐물흐물해 펀치 강도가 약하고. 공감 없는 논리는 몸이 경직되어 펀치 속도가 느리다.” 정철 저(著) 《꼰대 김철수》(허밍버드, 21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견해의 일치와 공감은 다릅니다. 머리로 견해의 일치를 본 것은 언제든 부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공감한 것은 오래갑니다. 동감은 주로 머리에서 나오고, 공감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머리에서 나온 것은 ‘생각’이고, 마음에서 나온 것은 말 그대로 ‘마음’입니다. 마음으로 공감한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성이 있고, 롱런합니다. “유행어라도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반복이 지겨워지면 그 순간 수명이 다하고 금세 기억..

한 사람 (단 10:1-9)

"5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단 10:5) 고레스 3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때는 이스라엘 국민이 본국으로 귀환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다니엘이 본 환상은 큰 전쟁에 관한 일입니다. 그 때 다니엘은 세이레동안 슬퍼하였습니다. 좋은 떡과 고기와 포도주를 먹지 않고 기름을 바르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고국귀환이 결정되었음에도 돌아가지 않는 백성을 향한 슬픔 혹은 귀국한 조국에서 들려오는 어려움들을 들었던 것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때 힛데겔 강가에서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를 봅니다.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 한 사람은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