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4 17

예수의 죽음을 기념한 여인!(마26:6-13)

예수의 죽음을 기념한 여인!(마26:6-13) 본문은 이른 바 한 여인의 도유 사건이다. 이 여자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에 대한 예수님의 의미 설명이 바로 나온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12절) 죽은 자에게 향유를 붓는 것은 유대의 오랜 관습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뒤에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위가 바로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받으신 예물로 보신 것이다. 이 사건은 놀랍게도 이러한 구속사적 의미가 있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할 두 관점이 있다. 하나는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이며, 또 하나는 보고 분개하여 ‘왜 이것을 허비하느냐?’며 그녀를 면박 주었던 제자들이다. 과연..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열왕기하7:2)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열왕기하7:2) 엘리사는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람왕 벤하닷의 군대에 포위 되어 식량을 구할 수 없어서 심지어 자기의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내 놓아 아이들을 삶아먹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참함에 빠져 있었습니다.(왕하6:24-29) 그런데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하루 만에 전세를 역전 시키셔서 식량을 사서 먹고 살만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의 측근이자, 왕이 의지하는, 왕을 보좌하는 장관이라고 하는 자는 그런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엘리사에게 한 말입니다. "..

60.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

[기도]​ ​ 아버지 하나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에 머무는 은혜를 주옵소서! [말씀]​ ​ '1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10 그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삼상21:1,10) [묵상]​ ​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피신하였던 ‘놉’과 ‘가드’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습니다. ​ 놉은 영적으로 유익한 곳으로 공급받아 채우고 만족하는 곳이며, 블레셋 가드는 무익한 곳으로 꿈과 소망 모든 것을 빼앗기는 곳입니다. 놉은 은혜의 장소로 말씀, 기도, 찬양, 목자, 성도, 예배가 있는 믿음의 공동체로 다윗은 그곳에서..

의인,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삼상24:1-22)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삼상24:1-22) 엔게디 광야에서 다윗과 사울은 만나고,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나 기름 부음받은 자를 해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겉옷만 베고 살려줍니다. 의인 곧 그리스도인은 악을 악으로 이기지 않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롬12:19). 악한데 미련하고 선한데 지혜롭습니다(롬 16:19).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기다립니다(롬12:21). 이 땅에서 ..

'힘이 미치는 대로'(레 14:21-32)

"그는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한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를 드리되"(레 14;30) 가난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장애물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부정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난과 구원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합당하 기회를 주셨습니다. 가난한 피부병 환자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마련된 하나님의 배려를 봅니다. 그들이 어린 양 세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삼을 가져올 수 없다면, 어린 양 한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일, 그리고 다른 두 마리 어린 양 대신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바치도록 했습니다(21,22절). 하나님은 힘이 미치는 대로 정결을 위하여 제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신약의 표현은 아마 자원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베르나르 키리니 : 첫 문장 못쓰는 남자 / '신실한 예배와 믿음의 말부터 시작하십시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베르나르 키리니의 중편소설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를 하나님께 드리며 ‘신실한 예배와 믿음의 말부터 시작하십시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작품에서 첫 문장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첫인상보다 큰 힘이 있습니다. 첫 문장에 내포되어 있는 폭발 직전의 꿈틀거림,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예고, 총구의 방향! 그것이 첫 문장입니다. 주인공 피에르 굴드는 제목 그대로 첫 문장을 쓰지 못하는 작가 지망생입니다. 수많은 고민 끝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수년 전부터 구상해왔던 책을 쓰기로 마음먹는 순간, 자신이 첫 문장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가 앞으로 쓰게 될 모든 것은 바로 첫 문장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중압감에 허투루 시작할 수가..

당신멋져

당신멋져 “처음 말하는 것인데, 손자가 아주 어렸을 때 하와이에 와서 베이비 골프를 치는데, 져주니까 재미있어서 계속하자는 거예요. 시간이 없어 죽겠는데...‘얘를 그만두게 하려면 내가 계속 이기면 포기하겠지.’ 그러고서 그걸 끊으려고 계속 이긴 거예요. 손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는 순간 생각했습니다. ‘그때 내가 져줄걸. 그때 다른 일이 뭐 대단한 거라고. 이제 죽어도 아이에게 못 해주는구나.’ 할아버지가 계속 이기니까 아이가 얼마나 분했겠어요. 인간이 이런 거예요. 자기와 아주 가까운 손자, 딸, 아내, 남편에게조차 그런 짓을 한다고요.” 이어령 이재철 공저(共著) 《지성과 영성의 만남》 (홍성사, 315-316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지는 것과 져주는 것은 다릅니다. 지는 것은 힘이 없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참된 지혜 (2022년 7월 14일 목요일)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역대하 10:4). 솔로몬 왕은 나라를 잘 통치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보통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진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등극했을 때 백성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솔로몬 왕은 백성들의 멍에를 무겁게 했다고 합니다. 솔로몬 왕에게 통치하는 지혜는 있었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지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평생 왕궁에서만 곱게 자랐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솔로몬 왕에 비해 다윗 왕은 어려서부터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가며 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여러 가..

미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명! (2022년 7월 13일 수요일)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사도행전 21:13).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전도자 빌립의 집에 묵었습니다. 아가보 선지자가 유대에서 내려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발을 잡아매면서 그 띠의 임자가 예루살렘에 가면 그렇게 결박당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말리자 바울은 울어서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아가보가 예언한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구속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설령 그렇게 되어 예루살렘에서 순교를 하더라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이..

사죄와 치유 (막 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막 2:9) 오늘 본문 말씀은 얼핏 중풍병자 전승의 전체 구조로 볼 때 있으나 없으나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족처럼 보입니다. 8절은 예수님이 서기관들의 속마음을 아셨다는 내용입니다. 10절은 예수님의 사죄 능력에 대한 진술이고, 11절은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는 9절 말씀이 이 자리에 끼어들게 되었을까요? 이 문장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는 말과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쉬울까요? 공교롭게도 글자 수로만 볼 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