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9 17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26:36-46)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26:36-46) 본문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얼마나 절실하셨으면 이렇게 무릎 꿇고 반복해서 부르짖으셨을까? 누가는 특히 ‘예수님의 기도’에 주목했다. 주님은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으며(눅22:30) 새벽에 기도하셨고(막1:35) 밤새도록(눅6:12)기도하셨다. 들(눅5:16)과 산(눅6:12)에서도 기도하셨으며 심지어 십자가 상(눅23:34,46)에서도 기도하셨다. 전혀 기도하지 않으셔도 되셨을 주님이 말이다. 그날 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책망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영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너희가 나와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진짜 경건, 거짓이 아닌 경건, 참 신자다움은 환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어제 통화한 전도사님, 어제 만난 친구, 어제 통화한 집사님 모두 교회가 환난을 당하고 있는 고아와 과부와 연약한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누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거짓과 위선의 경건, 경건의 모양만 있는 껍데기 경건으로 포장되어 있지 않나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왕하 19:29-31)

(2022/07/10, 성령강림 후 제5주) [히스기야야, 너에게 증거를 보이겠다. 백성이 금년에 들에서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먹고, 내년에도 들에서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내후년에는 백성이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둘 것이며, 포도밭을 가꾸어서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이다. 유다 사람들 가운데서 환난을 피하여 살아 남은 사람들이 다시 땅 아래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살아 남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오고, 환난을 피한 사람들이 시온 산에서부터 나올 것이다. 나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 • 궁핍한 시대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처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왕상 19:1~4, 8~15a)

예수님의 변화산 이야기(마 17장, 막 9장, 눅 9장)에 등장하는 구약의 두 인물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수많은 인물 중에서 두 사람이 거론되었다는 사실은 복음서 기자들이 엘리야를 모세 못지않은 인물로 평가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엘리야라 지칭하신 적도 있습니다.(마 11:14) 거꾸로 예수님이 엘리야라는 당시 소문도 있었습니다.(마 16:14) 엘리야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극적인 인생을 산 인물입니다. 초자연적인 기적도 많이 행했습니다. 불 수레를 타고 승천하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입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왕상 17~19장과 왕하 1~2장에 나옵니다. 엘리야와 이세벨 엘리야가 유대인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에 큰 울림이 된 이유는 여럿인데, 그중의 하나는 그가 박해받은 선지자를 대표한다..

하나님의 후회, 사울의 기념비 (삼상 15:11-12)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삼상 15:11-12) 통치자가 하나님의 근심이 되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이다. 통치자가 자신의 소명, 하나님의 명령을 망각하고 자신을 위한 기념비만 생각하면 패망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하나님의 계획 (삼상 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삼상 16:1) 사울왕이 버림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슬퍼하지 않습니다. 한 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사울이 금방 힘을 잃지 않습니다. 긴 시간 통치합니다. 그러나 수명이 다한 왕입니다. 하나님이 버린것에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유다의 멸망때도 하나님은 손뼉을 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어느 때까지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2022년 7월 19일 화요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출애굽기 16:28).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아직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기 이전이었지만 하나님은 한 규칙을 미리 주셨습니다. 안식일 아침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오지 말고 전날에 이틀 분 만나를 거두어 안식일을 준비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 중 일부가 만나를 거두러 나왔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질책으로 들립니다. 우리도 말씀을 듣고 또 듣지만 그 말씀을 일터에서 제대로 지키기 ..

놀라움 (1)(막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일어나 네가 누웠던 침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중풍병자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신 예수님이나 그 대상이 된 중풍병자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있던 청중들의 시각으로 이 사건을 재구성해야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복음서 기자도 역시 독자들에게 바로 그것을 요구하고 있을 겁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와서 어떤 이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서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가 누워..

예수의 명령 (3)(막 2: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막 2:11) 중풍병자였던 이 사람에게 예수님이 내리신 세 번째 명령은 “집으로 가라.”입니다. 예수님은 왜 “나를 따르라.” 하지 않고 집으로 가라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을 자칫 오해하면 이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달리 출가해서 예수님을 따를만한 능력이 없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물로 그런 말씀은 아니겠지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출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따를 사람은 따르고 집으로 가야 할 사람은 집으로 가야겠지요. 그런데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과 이 중풍병자처럼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결정적으로 다른 사태는 아닙니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분명히 크게 다른 것 같지만 내면..

예수의 명령 (2)(막 2: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막 2:11) 예수님의 두 번째 명령은 “네 상을 들라.”입니다. 그 상은 그가 실려 왔던 들것, 곧 침대입니다. 병이 나았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충분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침대를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병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조금 더 섬세한 시각으로 이 말씀을 들여다보는 것도 나름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더구나 ‘큐티’ 공부는 객관적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그 말씀을 대하는 사람의 실존적 해석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렇게 사소하게 보이는 구절을 통해서 어떤 영적인 단서를 발견하는 게 필요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은 왜 중풍병자에게 침대를 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