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 416

그런데 너희는 왜? (마22:41-46)

그런데 너희는 왜? (마22:41-46) “다윗이...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했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는 다윗 왕이 자신의 후손을 ‘주’로 고백했는데, 왜 너희는 다윗이 ‘주’라 고백하는 그리스도가 현재 너희 가운데 임했는데(예수님의 성육신) 왜 그를 ‘주’로 고백하지 않느냐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너희 앞에 서 있는 내가 그리스도다. 그런데 왜 ‘주’로 믿고 고백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경 교사를 자처하는 자들이지만, 성경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이런 불행한 일은 오늘 날 교회에도 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말씀의 의미를 아는 것은 더 중요하다. 오늘 날 이단들의 문제는 성경을 선택적으로만..

55. 하나님의 기준(거룩)

[기도]​ 여호와 나의 하나님, 일상의 모든 결정과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함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삼상21:4~6) [묵상] 율법의 본뜻(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생명을 ..

주의 몸과 피에 합당한 만찬 (고린도전서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린도전서11:27) 고린도교회는 "함께 모여 주의만찬을 할 수 없으니"(고전11:20)라고 한 것을 보면 주의만찬을 하면서도 주의 몸을 기념하는 빵과 주님의 피를 기념하는 잔을 모든 성도가 함께 골고루 나누지 못하고 마치 배를 채우기 위해서 주의만찬을 하는 것처럼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마셔 버리는 사람 때문에 주의만찬다운 주의만찬을 나누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지체의식도 없고, 교회에 대한 이해가 없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참여하는 것이 무..

?당신의 오늘은 어디 있는가??

?당신의 오늘은 어디 있는가?? 후회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 덜 후회하며 사는 방법의 표현 중에 하나가 ‘있을 때 잘해’라는 말로 이 말은 ‘나 자신’과 ‘현재’에 최선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오늘’ 즉 ‘지금’이 시간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내편으로 끌어가느냐에 따라 내일의 인생이 결정되므로 보고 싶은 사람보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하고 싶은 일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며, 미래의 시간보다는 지금의 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것, 이것이 지혜이며 평생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입니다. 석가는 인간은 세 가지 착각과 교만에 빠져 살기 쉽다 했습니다. 젊을 때 안 늙을 것 같은 착각과 교만, 건강할 때 병 안들 것 같은 착각과 교만, 그리고 영원히 ..

'여전히 범죄하여'(시 78:12-33)

"이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범죄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시78:32) 하나님은 옛적 일에 대하여 후손 대대에 알릴 것을 명령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반복적으로 범죄한 이스라엘을 지적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너고 광야 생활 가운데 반석에서 물이나고, 낮에는 구름과 저녁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불신가운데 있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탐욕으로 가득차고,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광야에세 식탁을 베풀수 있을까 의심하였습니다. 이성으로 생각할 때 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디. 풀이 없는데 가축을 기를 수도 없습니다. 당연하게 ..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의 모습 (시78:1-11)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78:8)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셨고, 기록하게 하셨으며 전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의 기록자와 전달자를 세웠습니다. 말씀은 현실적이지만 역사성과 시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노래합니다. 말씀은 화석과 같은 유물이 아닙니다. 화석도 전해주는 교훈이 있지만 시대성이 없고, 역사적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지금 여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시인은 말씀의 비밀을 대대로 전할 것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알게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일도 알게합니다. 역사 속에서 행하..

‘힘내’라는 말보다 좋은 말

‘힘내’라는 말보다 좋은 말 “‘힘내’라는 가짜 긍정의 멘트보다, ‘이제 그만 울어’라는 멘탈 관리성 발언보다, ‘힘들었겠다’는 말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태지원 저(著)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가나, 23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소설가 이외수는 세상에서 제일 매운 고추는 마른 고추도, 빻은 고추도, 파란 고추도,빨간 고추도 아니라 ‘눈에 들어간 고추’라고 했습니다. ‘눈에 들어간 고추’ 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과 대상이 하나가 되고, 그 매운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상과 합일되는 가슴의 글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치 고추가 내 눈에 들어가서 시리고 아린 느낌처럼, 독자와 같은 기쁨과 아픔을 느끼는 공감의 글을 쓰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문학은 따뜻한 공..

아무에게 아무 말도 (막 1: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막 1:44) 앞서 43절에서 예수님이 이 나병환자에게 엄하게 경고하신 이유가 44,45절에 걸쳐서 설명됩니다. 나병치유 사건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 사람이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될 줄 알았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 나병환자의 마음을 우리가 모른 바는 아닙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어떻게 숨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일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런 일들은 아직 드러날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하고 말씀하셨는데,..

엄한 경고 (막 1: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막 1:43) 헬라어 성경에 따르면 이 43절은 44절과 독립적인 문장입니다. 우리말 성경으로 읽는다면 43절과 44절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사만 연결하면 “보내시며, 경고하사, 이르시되”가 됩니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으로는 이 동사들이 각각의 문장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루터 성경도 역시 43절에서 예수님이 그를 위협하셨으며, 곧바로 내어 쫓으셨다고 번역한 다음에 44절은 다시 “그리고”로 시작합니다. 제가 여기서 헬라어 성경의 문장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헬라어 성경과 우리말 성경에 뉘앙스의 차이가 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마가복음 기자가 44절을 강조하기 위해서 43절의 말씀을 언급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보통 때..

역대지하 28장: 아하스의 우상 숭배와 그 결과

해설: 요담이 죽고 그 아들 아하스가 20세에 왕위에 올라 16년 동안 통치합니다. 아하스는 유다 왕들 중에 최악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등 돌렸을 뿐 아니라 우상 숭배에 깊이 빠졌고, 율법이 엄하게 금지한 유아 제사를 드리기까지 했습니다(1-4절). 왕이 우상 숭배에 빠지니 자연히 국력이 쇠약 해졌습니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유다는 시리아와 이스라엘 연합군에 의해 침략 당합니다. 이스라엘 군은 회군 하면서 이십만 명이나 되는 유다 백성을 사로잡아 갑니다(5-8절). 당시 사마리아(이스라엘의 수도)에는 오뎃이라는 예언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개선하는 이스라엘 군을 찾아가 동족에 대한 과도한 살륙 행위와 포로로 잡아오는 행위를 책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신 것은 사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