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5 11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있사오니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있사오니 “친절한 말 한마디와 가벼운 미소는 타인의 마음을 녹이는 가볍지 않은 선물이다. 편의점에서 물을 사고 계산하는데 아주머니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인데도 아주머니의 미소와 따뜻한 말투에 미소가 지어졌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뜻 밖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이어진 저(著) 《가장 보통의 감성》 (시소, 4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잠시나마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일 경우가 많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거대한 함선(艦船)같은 마음이 움직입니다. 한 방울의 꿀은 수많은 벌을 끌어 모으지만, 1만 톤의 가시는 단 한마리 벌도 모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가시 돋..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7:53-8:20)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성전에서 말씀하시고 감람산으로 가셨다가 다시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1-11, 12-20절입니다. 그러나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이라는 사실입니다. 성전으로 왔을 때 사람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히 여인을 데려왔습니다. 간음죄는 돌로 죽임을 당해야 하는 죄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여인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을 어기고 용서한다면 율법에 대항하는 반역자가 되고, 같은 죄를 즐기는 자가 됩니다. 반면에 모세의 율법대로 행한다면 새로운 시대와 차..

회개와 복음 (3)(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오늘 본문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면 회개는 복음을 믿는 것의 전제 조건입니다. 혹은 회개가 복음의 선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바꾼다는 의미의 회개 경험이 없다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논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 같은 노파심이 들어, 이 대목에서 아무래도 한 번 더 짚어야겠군요. 사람들은 회개를 지나간 일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 주인 허락을 얻지 않고 남의 과수원에 몰래 들어가서 과일 따먹은 것을 놓고..

회개와 복음 (2)(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회개는 이 땅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하늘로 관심의 축을 옮기는 신앙적 태도이며 결단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주 공간의 어느 한 지역을 복음서가 말하는 그런 하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하늘은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곧 하늘이 가까이 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까이 온 그 하늘은 우주 물리학적인 차원에서의 하늘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또한 우리가 관심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그 목표도 역시 우주 공간의 하늘이 아니라 게 분명합니다. 이미 답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 같습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 즉 하..

역대지하 7장: 낙성제를 올리다

해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제물을 살라 버리고 성전에 주의 영광이 가득 찹니다. 그로 인해 제사장들은 성전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 광경을 본 백성은 바닥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합니다(1-3절). 그들은 하나님의 응답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풍성한 제물을 바칩니다(4-7절). 그런 다음 일 주일 동안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초청하여 축제를 엽니다(8절). 성전 낙성 축제를 마친 후, 그들은 연이어 일 주일 동안 장막절을 지켰고 마지막 날에는 마감 성회를 엽니다(9절). 두 주간 동안의 축제를 즐긴 후, 백성은 주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축복을 내려 주신 것에 흡족해 하며 각자의 처소로 돌아갑니다(10절). 성전 건축을 위한 모든 일을 마무리 했을 때, 주님께서는 솔로몬의 꿈..

‘칼(劍)’의 권세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통치 / 장대선 목사(가마산 교회)

“방종하는 자들을 치리하도록, 하나님께서는 권력을 위임해 주신 것” 현대사회에서는 종교 혹은 신앙의 문제와 정부 혹은 사회의 문제 사이에는 엄연한 구별이 존재하는데, 그러한 구별은 단순히 행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의식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뿌리깊이 갈라져 있어서 일반적인 신앙으로는 이를 바르게 의식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하다보니 그러한 구별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교집합(交集合)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는 것은, 기독교를 가히 이슬람(Islam)과 같은 신정국가를 지향하는가 하는 의심을 받기 십상이다. 프랑스 신앙고백(1559년) 제35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방종과 욕망을 억제하기 위한 굴레와 같은 것을 두셔서 법과 정치를 통해 이 세상이 다스림을 받는 것을 원하셨다”고..

내 영혼의 백신

내 영혼의 백신 글쓴이/봉민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세상의 모든 것 제켜두고 예수님만 생각하라는 것일까? 온종일 예수님에 대하여 묵상하며 감사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사는 것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사는 것일까?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예수님만 생각하며 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예수님의 정신으로 예수님만 의지하며 예수 안에서 살라고 하시는 말씀일 것이다. 예수님을 온전히 알면 예수님을 닮고 싶고 예수님처럼 살고 싶을 것이다. 내 속에 흐르는 피도 내 뼛속까지도 예수님이 느껴지도록 예수님께 젖어 살 수만 있다면 나는 주안에서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고 살게 될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인간은 누구나 죄에 노출 되어 있다. 접촉하는 순간 감염..

‘오직 예수’만 바라보라!(마17:1-13:변화산 사건)

‘오직 예수’만 바라보라!(마17:1-13:변화산 사건)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8절) 변화산 사건은 이 제자들에게 신비였고 두려움이었다.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6절) 이런 제자들을 주님께서는 따뜻하게 안심시키셨다.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7절)” 이 위로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세와 엘리야는 떠나고 오직 예수만 보였다. 여기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은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졌다’는 말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을 대표하는 자’와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이는 이제 율법도 선지자도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이신 예수’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로새서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로새서1:28) 당신은 예수님 믿고 변화되었습니까? 당신은 예수님 안에 살면서 지금 계속해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변화를 갈망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혹시 "사람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말에 속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혹시 변화되는 것을 보기 원하는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도 사람은 변화시키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은 말씀이 자신을 변화시켰고,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자라게 하시고, 완전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말씀을 전파하고, 말씀으로 권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데에 힘을 다하여 수고했습니다(골1:29). 하나님은..

거룩한 싸움 (삼상 17:41-58)

삼상 17:41-58 묵상입니다.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다윗을 업신여기고, 다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는 골리앗.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교만한 자입니다. 막대기와 물매돌을 지니고 믿음으로 나서는 다윗. 만군의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온 땅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합니다. 목자 다윗은 물매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증명합니다. 사울은 다윗의 정체를 묻고 다윗은 그 앞에 섭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나의 구주심을 찬양합니다. 믿음의 주시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순례길을 가는 오늘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