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4 27

오직 은혜로 얻는 의 (로마서 3:21~31)

“하나님의 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죄 아래에 있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을 어떻게 하나님이 구원하시는가에 대한 소식입니다. 복음은 죄를 용서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받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은 구원의 소극적인 면입니다. 구원의 적극적인 면은 의롭게 됨으로써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부..

하늘에 기록된 이름 (눅 10:1~11, 16~20)

싯다르타나 공자나 마호메트, 그리고 구약 율법의 태두라 할 수 있는 모세는 천수를 다했습니다. 그들의 인생살이에 관해서도 알려진 사실이 많습니다. 이에 반해서 삼십대 중반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예수님에 관해서는 알려진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30세쯤에 출가하여 2~3년간 활동한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문서(위경)가 있기는 하나, 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 짧은 2~3년간 예수는 유랑 랍비로 살았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제자들과 함께 성지 순례차 예루살렘을 찾는 과정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바로 복음서 내용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던 이들 중에 칠십 명을 모아서 둘씩 여러 마을로 보냈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처한 영적 실존은 ..

다음 세대를 위해

팬데믹 이전에 우리 교회는 여름 마다 전교우 수양회를 가지곤 했습니다. 교인 수가 적을 때에는 거의 전부가 참여 했기에 ‘전교우 수양회’라는 이름이 어울렸는데, 교인 수가 늘어나면서 참석하는 교우보다 참석하지 않는 교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수양회를 한 번 치루려면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되는데, 그 혜택은 일부만 입게 되었습니다. 그 문제로 고민하던 차에 팬데믹이 터졌고 자연스럽게 중단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수양회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 방식대로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지난 5월에 윤석현 목사님의 인도로 청년회의 하루 수양회가 있었습니다. 수양회 이후로 청년들의 표정이 달라지고 모임의 다이내믹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변화를 보면서 ‘우리 ..

연약함의 진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 안에 이런 저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 그 중 하나가 연약함에 대해 점점 너그러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여기서 말하는 연약함이란 실수 , 허물 , 죄 같은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제 자신에게서 연약함이 보이면 수치스럽게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애썼고 , 다른 사람에게서 보이면 덮어주고 다독이기 보다는 판단하고 비판하기에 민첩했습니다 . 그런 태도가 저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가 되기는 했지만 , 다른 사람에게는 날 선 칼날처럼 보였습니다 . 아무리 자신을 바르게 세우고 지키기 위해 분투 해도 그 노력이 사람을 완전한 존재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 죄성은 우리의 존재 속속들이 스며 들어 있어서 연약함은 언제든지 불쑥 그 흉한 얼굴을 내밀 수 있습니다 . 때로는 자신이 한 ..

유일하신 지존자 (시83:1-13)

"18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시83:1-13) 이스라엘을 대적하였던 나라들에 대한 시편기자의 턴원입니다. 주의 원수들에게 침묵하지 말고 심판하여 달라는 간청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기를 구합니다. 사사기 시대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동맹군들에 대한 심판을 탄원합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공의를 허물고 우상을 숭배하고 거짓을 행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땅에서도 이뤄지지만 그렇지 않을지라도 마지막 심판을 피하여 갈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기에 그리스도인은 탄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모욕하고 조롱하는 무리들은 반드시 ..

죽음으로 말하다.(삼상 31:1-13)

"9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10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삼상 31:1-13) 사울과 세 아들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하늘 높은 줄 몰랐던 그의 권력이 땅으로 추락하였습니다. 사울은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받았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를 평가하기를 죽어서도 설교하는 설교자라고 합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또 다른 삶을 보여줍니다. 벧산 성벽에 달린 머리없는 시신은 욕망에 가득찬 권력자의 최후를 보여줍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잃어버리면 누구나 부끄러운 결말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마지막 심판대에서 확정됩니다. 권력을 잡은 자들..

게으른 것이 눈

게으른 것이 눈 어렸을 적에 농사일을 도우면서 짜증내고 싫어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늘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것이 눈이란다"며 나를 타이르셨다. 한 번은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보릿단을 탈곡해야 하는데 그것을 올려다보며 막막해 하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또 그 말씀 "눈이 게으른 것이여. 내일 비가 온다는데 하는 데까지 해봐야제…" 하시면서 보릿단을 헐어 탈곡기에 넣기 시작하셨다. 그날 어머니와 나는 꼬박 날을 새워서야 그 높은 보릿단을 다 탈곡해낼 수 있었다. 하고 보니 정말 어머니 말씀대로 사람에게 제일 게으른 것이 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보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일도 실제로 부딪쳐보면 쉬운 일과 어려운 일, 그리고 불가능한 일의 차이는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차이뿐이라고 에디슨은 말하였다...

인공지능 AI는 양심이 없으니

인공지능 AI는 양심이 없으니 “인간보다 지능적이고 인간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 동작하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세상을 온통 흔들어대며 크게 바꾸어 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고 함께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확보하는 일에 지금 당장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확보하려면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고 발전시키며 사회 전반에 이를 확산하는 주체인 ‘인간 자신’을 먼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겉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흔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을 흔드는 것은 인간 자신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김명주 저(著) 《AI는 양심이 없다》 (헤이북스, 21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기술은 양심이 없다”고 말한 적..

인공지능 시(詩)

인공지능 시(詩) “커즈와일은 RKCP Ray Kurzweils Cybernetic Poet로 불리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들을 입력했다. 그러자 그녀 고유의 시어와 문체의 패턴을 알아내서 그녀가 짓지 않은 새로운 시를 창작했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창작한 그림과 시는 인간들이 컴퓨터가 만든 작품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예술 분야에서의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통과했다.” 김기봉 저(著)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문학과 지성사, 286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문학마저 인공지능은 턱밑까지 다가왔습니다. 인공지능이 시와 소설을 쓰고,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며, 신..

세관에 앉은 사람 (1)(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든 제자들은 아니고 다섯 명이 그 대상입니다. 베드로 형제, 야고보 형제, 그리고 레위입니다. 앞의 네 사람은 어부였고, 레위는 세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 레위는 알패오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의 목록인 마가복음 3:18절에 따르면 알패오의 아들은 야고보입니다. 어느 구절이 옳은가요? 알패오의 아들은 레위인가요, 야고보인가요? 또한 오늘 본문과 병행구인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로 부른 세리를 마태라고 이름하며, 누가복음은 마가복음과 똑같이 레위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조금 복잡합니다. 일반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