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3073

새 포도주 (6)(막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 2:22) 어제 어쩌다가 술 문제를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압축적으로 진술된 짧은 글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기 좋습니다. 아무래도 사족으로 몇 마디 더 붙여야겠군요. 저는 어제 술과 커피가 모두 기호식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술이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사양이지 신앙 자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술 먹고 술주정하고 추태를 부려도 좋다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지는 마세요. 사람은 말짱한 정신으로도 추태를 부릴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서울 시청 광장의 기도회에서, 영락교회 집회에서도 보았습니다. 그건..

새 포도주 (5)(막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 2:22) 포도주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한국교회의 술 문제를 한번 짚어야겠군요. 정통신앙에 묶인 분들은 일반적으로 술을 그리스도인이 금해야 할 중요한 목록의 하나로 생각합니다. 반면에 이런 정통신앙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십니다. 꽉 막히지는 않았지만 온건한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바울처럼 교회의 덕과 믿음이 약한 사람을 위해서 술을 사양합니다. 이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술을 성서와 신학에 근거해서 본격적으로 설명하려면 시간이 제법 많이 필요하니까, 여기서는 그냥 저의 개인..

새 포도주 (4)(막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 2:22) 어제 저는 포도주의 알코올 농도가 13.5%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한잔만 마셔도 취기가 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막걸리나 동동주가 되겠지만, 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취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는 뇌의 이성적인 활동이 둔화된다고 보아야합니다. 그 덕분에 평소에 걱정하던 문제들도 걱정거리로 느껴지지 않는 거죠. 그러니 기분이 좋다고 느낄 밖에요. 어제 저는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새 포도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유대교는 ..

새 포도주 (3)(막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 2:22)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에서 포도주는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의 하나였습니다. 헬라 신화에도 포도주가 자주 언급되는 걸 보면 거의 모든 유럽 사회가 비슷한 형편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군요. 요즘은 프랑스 포도주가 유명하다지요?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라는 이름의 포도주는 그 해에 수확된 포도로 만들어 처음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11월 셋째 주 경에 출시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햇살을 자랑하는 이태리와 스페인의 포도주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칠레에서도 포도주가 많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새 포도주 (2)(막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 2:22) 낡은 가죽 부대의 특징은 어제 말씀드린 대로 신축성과 탄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든지, 아니면 웬만한 충격을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해야만 가죽 부대는 견딜 수 있습니다. 그게 없으면 결국 찢어지고 맙니다. 그리스도교 신앙도 여기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탄력성이 완전히 사라진 가죽 부대인가요? 아니면 어느 정도 늘어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가죽 부대인가?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 전자에 가깝습니다. 자신과 약간 다른 생각을..

새 포도주 (1)(막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 2:2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다.”는 이 말씀은 앞서 본 생베 조각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낡은 가죽 부대는 탄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새 포도주의 발효를 견뎌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새 포도주이고, 유대교는 낡은 가죽 부대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이해하려면 유대교의 틀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새 포도주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원래 포도주는 오래 된 것일수록 높이 쳐줍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새 포도주라는 것은 포도주 자체의 품질을 말한다기보다는 그것의 성격을 말합니..

생베 조각 (막 2: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인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막 2:21) 21절의 생베 조각과 22절의 새 포도주 이야기는 유대인들의 격언입니다. 성서 기자는 이런 격언을 통해서 예수님과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함께 묶어 놓으면 한쪽이 손상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손상되는 쪽은 유대교와 그 가르침입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면 얼마 안가 낡은 옷이 해어지고 말듯이 말입니다. 아주 리얼한 표현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옷을 기워 입는 일이 많았습니다. 약간 해어졌을 때는 그저 실로 간단히 꿰매면 됐지만, 해어진 부분이 넓으면 다른 헝겊을 대고 기워야했습니다. 옷만이 아닙니다. 양말도 기워..

신랑을 빼앗길 날(막 2: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막 2:20) 신랑을 빼앗긴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의미하겠지요. 처형당하신 예수님은 부활, 승천을 통해서 이제 제자들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은 부활 이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 지상생활을 하시고 세상을 뜨셨다고 합니다. 왜 예수님은 부활의 실체로 이 세상에 계속해서 머무르지 않으셨을까요? 오늘 본문과 직접 연관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길게 설명하지는 말고 한 마디만 하지요. 부활과 승천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은폐된 궁극적인 생명의 몸으로 변화했다는 하나의 사실에 대한 이중적인 묘사입니다. 어쨌든지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당하신 ..

혼인집에서 (5)(막 2: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막 2:19) 왜 예수님은 금식 문제를 혼인집과 연결시키고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종교와 삶의 관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금식은 종교 형식이고 혼인은 삶의 내용입니다. 물론 형식은 그 안에 내용을 담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 하고, 그럴 경우에 의미가 있지만, 실제의 삶 앞에서는 늘 앞자리를 양보해야합니다. 금식은 그것 자체 안에 존재론적 근거가 없지만 혼인은 자체 안에 존재론적 근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런 점에서 종교형식..

혼인집에서 (4)(막 2: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막 2:19) 어제 큐티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노래하고 춤출 이유가 훨씬 많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 이유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을 들은 것만으로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발견한 그 이유들이 우리 삶의 실체가 되려면 우리에게 약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게 지혜인지 수행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인식의 큰 전환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 삶이 혼인 잔치에 참여한 것 같은 기쁨과 평화로 가득하려면 “여기 지금”의 신비를 맛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모두 지나갔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현재만 우리와 일치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