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3070

세관에 앉은 사람 (3) (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나는 어젯밤 선잠을 잤습니다. 아무래도 그 낯선 사람 생각이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가 누군지, 그가 한 말과 그가 한 일은 정말 옳은 건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잊을 수가 없네요. 내 영혼의 심층을 뚫어보는 것 같았으니까요. 밤새도록 뒤척이는 나를 보고 아내가 잠결에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변소에 간다고 한 마디 하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깜깜한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도대체 하늘을 저렇게 뿌옇게 수놓고 있는 저것들은 무얼까요? 이런 깊은 밤에 혼자 하늘을 바라보기는 처음입니다. 아니군요. 처음은 아닙니다...

세관에 앉은 사람 (2) (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나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내 자리에 앉아서 내가 맡은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세관에서 내가 맡은 일은 유대인들에게서 징수한 세금을 상부에 납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서 로마 공무원 시험을 보고 벌써 5년 동안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마음이 복잡합니다. 가버나움에 사는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점점 힘들어지고, 그래서 세금은 잘 들어오지 않는데, 위에서는 작년보다 더 많은 액수를 보내라고 닦달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니 민중들과 자주 다투게 됩니다. 우리를 보는 그들의 눈빛..

세관에 앉은 사람 (1)(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든 제자들은 아니고 다섯 명이 그 대상입니다. 베드로 형제, 야고보 형제, 그리고 레위입니다. 앞의 네 사람은 어부였고, 레위는 세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 레위는 알패오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의 목록인 마가복음 3:18절에 따르면 알패오의 아들은 야고보입니다. 어느 구절이 옳은가요? 알패오의 아들은 레위인가요, 야고보인가요? 또한 오늘 본문과 병행구인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로 부른 세리를 마태라고 이름하며, 누가복음은 마가복음과 똑같이 레위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조금 복잡합니다. 일반적으로..

가르침 (막 2:13)

'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막 2:13) 예수님은 바닷가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평소에 사람들에게 ‘랍비’라는 호칭을 얻었듯이 예수님은 가르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기독교 교육학자들은 healing, teaching, preaching을 예수님의 삼대업무였다고 말하지만, 여기서 가르침과 설교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구분은 가능합니다. 설교는 선포의 성격이 강한 반면에 가르침은 설득의 성격이 강합니다. 선포는 계시에 근거하지만 설득은 인식에 근거합니다. 선포는 위로부터의 일이라면 설득은 아래로부터의 일이겠지요. 선포로서의 설교에는 믿음이 요구되지만 설득으로서의 가르침에는 합리성이 요구됩니다. 그렇지만..

바다 이야기 (막 2: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막 2:13) 본문의 바다는 물론 갈릴리 호수를 가리킵니다. 갈릴리 호수와 그 호수를 낀 몇몇 마을, 그리고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벳세다 광야 등등, 갈릴리 호수는 예수님 활동의 실질적인 중심무대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출생지는 베들레헴이지만 그가 성장한 고향은 갈릴리 지역의 한 작은 동네 나사렛입니다. 복음서의 개괄적인 보도에 따르면 때가 되어 출가하신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일단 남쪽 예루살렘 근방으로 내려가신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예수님의 본격적인 활동이 갑자기 갈릴리 호수 근방에서 시작됩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정확한 연대기에 따라서 보도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사..

놀라움 (6)(막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일반적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신비와 놀라움을 모르거나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이 현상은 우리에게 두 가지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냉담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냉담한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교회생활에 게으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작은 흠집이나 비본질적인 문제를 침소봉대합니다. 주로 그리스도교 지성인들에게 나타나는 이런 태도는 그리스도교의 표면적인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

놀라움 (5)(막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우리가 놀라움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앞에 놓인 이 세계가 너무 익숙하게 여겨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뜬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해서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족이 있고, 직업이 있고, 친구들도 있습니다. 하늘과 산, 새와 나비는 늘 그렇게 있어왔던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들은 그냥 늘 그렇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다르게 하면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 당연한 게 아닙니다. 내일 당장 해가 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이 멈추면 그것으로 낮과 밤의 변화는 ..

놀라움 (4)(막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아래의 글은 에 나오는 바르트의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그는 “신학적 실존”을 놀라움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잠시 귀를 기울여 봅시다. 누구든지 신학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학에서 손을 떼고 편견 없이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숙고해야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놀라움의 경험이 솟아올라서 더 이상 상실된 상태에 있지 않고 계속 강건해져야 한다. 얼마동안 놀라움을 경험했지만 지금은 놀라움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 놀라움의 경험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욱 곤란하다. 이러한 놀라움의 경험이 신학자에게..

놀라움 (3)(막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오늘 본문에서 중풍병자가 침대를 들고 나가는 걸 보고 청중들이 놀란 이유는 그들이 그런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일상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일을 실제로 경험한 그들은 놀랐습니다. 놀람의 실체는 바로 이것입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질 때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근거가 흔들리는 걸 경험합니다. 루돌프 오토가 말하는 ‘누미노제’의 경험, 즉 거룩한 두려움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위 앞에서 놀라는 경험이 그것입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성서..

놀라움 (2)(막 2:12)

'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오늘 그리스도교가 경전으로 삼고 있는 성서 전체는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구약성서 중에서 어느 곳이라도 펼쳐보십시오. 그곳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론 매 구절마다 ‘놀람’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일상이 기록되기도 하고, 비인간적인 사건이 진술되기도 하지만 그 저변에는 우리의 진부한 일상을 뚫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놀라움이 깔려 있습니다. 그 전형적인 예가 바로 출애굽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