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3070

영적인 인식 (2)(막 2: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막 2:8) 예수님이 서기관들의 생각을 ‘영적으로’ 인식하셨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에게 독심술(讀心術)이 있다는 뜻일까요? 웬만큼 정신적인 훈련이 된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예수님도 분명히 독심술 비슷한 능력이 있었을 겁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그가 살아온, 또는 경험한 범주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을 독심술로 보는 건 예수님을 오해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눈에 사람들의 마음이 읽혀졌다고 하더라도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닐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그런 것에 의지해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신 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런 건 ..

영적인 인식 (1)(막 2: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막 2:8) 오늘 본문에 따르면 서기관들의 생각을 예수님은 ‘중심’에서 아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심은 ‘심령’으로 번역될 수도 있는 헬라어 ‘프뉴마’를 가리킵니다. 루터는 이것은 ‘in seinem Geist’로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생각을 ‘자기의 정신’으로, 또는 ‘자기의 영’으로 아셨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생각을 영적으로 인식하셨다는 뜻이겠지요. 우리는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영적’이라는 말을 흔히 씁니다. 우리 목사님은 영적이라든지, 박 아무개 권사님은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말을 곧잘 합니다. 이런 말들은 그들이 어떤 사물이나 사태를 다른 사람들보다 훨..

속의 생각 (막 2: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막 2:8)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언행을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영적인 권위에 주눅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인격, 지식, 신분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 앞에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에게는 다른 사람과 완전히 구별되는 어떤 영적인 카리스마가 있었을까요? 그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에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역시 신적인 권위가 나타났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신성모독 (3)(막 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 2:7) 예수님의 언행을 신성모독이라고 본 서기관의 생각과 느낌은 우리의 일상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사람들이 신성을 부여한 체제나 이념들, 사물들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신성은 국가입니다. 어릴 때부터 강한 국가관에 의해서 교육받은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국가를 절대적인 체제로 여깁니다. 이런 국가 절대주의는 독재정권이 가장 애호하는 가치관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은 “나는 민족중흥의 막중한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이런 구호가 그 당시에 일..

신성모독 (2) (막 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 2:7)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제사장 등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언행에서 신성모독을 느낀 이유는 자신들이 절대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던 하나님을 예수님이 상대화 한다고 판단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이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여길 정도로 하나님의 신성을 절대화 하고 있었으니까 하나님을 아주 가까운 호칭인 ‘아빠’로 부른 예수님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무조건 배척하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그들의 종교적인 태도를 존경해야 합니다. 만약 그들의 경건생활이 없었다면 유대교는 존속할 수 없었을 겁니다. 수많은 고대 종교가 한 때 번영했..

신성모독 (1)(막 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 2:7)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의 언행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인 것이지요. 지금 우리와 달리 예수님을 평범한 유대 청년으로, 또는 젊은 랍비 정도로 생각한 서기관들의 눈에 예수님이 이상하게 보인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이 발언은 그 당시에 신성모독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의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은 예수님을 평생 따라다녔고, 예수님은 결국 그 죄목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신성목독이라는 건 절대적인 대상을 상대화할 때 붙여집니다. 물론 예수님이 일부러..

서기관 (2) (막 2: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막 2:6) 서기관은 종교 전문가들입니다. 전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꿰뚫고 있고, 현재 벌어지는 종교 현상을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이 사람들은 그 당시에 율법에 관한한 최고의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서기관 이외의 종교 전문가들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중의 한 집단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가장 큰 충돌을 빚은 이들로 묘사되고 있는 이들은 발군의 실력으로 율법을 실천적 삶에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서 서기관들은 율법의 이론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도 역시 그 당시 종교 전문가 집단이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유대 민중의 실제적인 삶을 지배하는 율법 전문가들이었다고 한다면 제사장들은 성전..

서기관 (1) (막 2:6)

'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막 2:6) 여러분은 중풍병자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성서 전체가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하니까 일단 예수님이라는 대답은 빼놓고 생각합시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 명이 바로 주인공일까요? 물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주목하셨으니까 그럴 만도 합니다. 많은 설교자들도 이 네 명을 주인공으로 삼아 우리도 그 네 명처럼 고통당한 사람들과 영적 마비된 사람들을 주님에게 데리고 와야 한다고 설교할 겁니다. 저도 앞에서 이런 뉘앙스로 설명하긴 했지만, 이런 성서읽기는 그렇게 바람직한 게 아닙니다. ‘큐티’ 방식의 짧은 공부로는 허용될 수 있지만 중풍병자 이야기 전체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예배의..

죄 (5)(막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본문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사람의 죄가 용서받았을까요? 이 사람이 온전한 몸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이 사람의 죄가 용서받은 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병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이 곧 사죄의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흉악범으로 변했을지도 모르며, 아니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우울증에 걸려 한 평생 불안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르고, 중풍병이 재발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제가 공연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죄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히 취급해도 괜찮..

죄 (4)(막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많은 지성인들이 그리스도교를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죄를 강조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옳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그 바탕에 죄에 대한 깊은 통찰을 깔고 있습니다. 이런 통찰은 갑자기 위에서 내려온 게 아니라 귀납적인 것입니다. 성서의 전승에 참여한 그 사람들은 인간 삶에 뿌리를 박고 있는 한 현실을 보았는데, 그것이 곧 죄입니다. 성서 기자는 그 죄의 현실을 선악과와 카인 설화를 통해서 설명했습니다. 선악과 설화에 대한 논란에서 간혹 어처구니없는 질문들이 나옵니다. 예컨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인간을 뱀의 유혹에 넘어가도록 만드셨는가, 또는 선악과는 무엇 때문에 만드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