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7 17

죄로 말미암아 양심이 마비된 압살롬(삼하14:28-33) / 리민수 목사

죄로 말미암아 양심이 마비된 압살롬(삼하14:28-33) 본문은 마침내 다윗과 압살롬이 상봉하는 장면이다. 즉 예루살렘에 들어왔음에도 2년 이상이나 다윗이 얼굴을 보지 못하고 죄인 취급을 당하며 지냈던 압살롬은 요압의 주선으로 부자가 상봉하게 된 것이다. 사실 압살롬은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근신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압살롬이 근신한 모습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는 오히려 그이 외모를 자랑하는가 하면(25-27절), 요압을 그의 중재자로 삼기 위하여 추수기에 이른 요압의 보리밭에 일부러 불을 질렀다(30절).  우리는 죄로 그 양심이 마비된 또 한사람을 보게 된다.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 이금환 목사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2:13)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2차선교여행이라고 일컬어지는 선교사역 중에 3주정도 데살로니가에 머물면서 전도해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행17:2).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를 이룬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도 위대하고, 복음을 전한 바울도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데살로니가교회를 기억하여 기도하고, 칭찬하고, 자랑스러워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

來如哀反多羅 4(이성복) / 정용섭 목사

來如哀反多羅 4 나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기에내 삶에 숫기 없기를,나는 이미 뿔을 가졌으므로내 삶에 발톱이 없기를!눈 대신 쇠꼬챙이를 가졌으므로내 눈에 물기 없기를!지금 내 손에 감긴 때 묻은 붕대,언제 나는 다친 적이 있었던가지금 내 머릿속 여자들은립스틱 짙게 처바른 양떼들인가해묵은 상처는 구더기들의 집,물 많은 과일들은 물이 운 것이다   來如哀反多羅 5 초록을 향해 걸어간다내 어머니 초록초록 어머니 가다가 심심하면돼지 오줌보를 공중으로 차올린다,하늘의 가장 간지러운 곳을향해 축포쏘기 그리고 또 가시나무에주저앉아 생각한다,사랑이 눈이었으면 애초에감아버리거나 뽑아버렸을 것을! 삶이여, 네가 기어코내 원수라면 인사라도 해라,나는 결코 너에게해코지하지 않으리라   來如哀反多羅 6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무엇을..

래여애반다라(이성복) / 정용섭 목사

이성복 來如哀反多羅 1 추억의 생매장이 있었겠구나저 나무가 저리도 푸르른 것은,지금 저 나무의 푸른 잎이게거품처럼 흘러내리는 것은추억의 아가리도 울컬울컥게워 올릴 때가 있다는 것!아, 푸르게 살아 돌아왔구나,허옇게 삭은 새끼줄 목에 감고버팀대에 기대 선 저 나무는제 뱃속이 온통 콘크리트 굳은반죽 덩어리라는 것도 모르고   來如哀反多羅 2 바람의 어떤 딸들은밤의 숯불 위에서 춤추고오늘 밤 나의 숙제는바람이 온 길을 돌아가는 것돌아가면 볼 수 있을까,바람의 어떤 딸들이신음하는 어미의 자궁을 열고피 묻은 나를 번쩍 들어 올릴 때또 다른 딸들이 깔깔거리며빛바랜 수의를 마름질하는 것보다가, 보다가 어미의 삭은탯줄 끌고 돌아올 수 있을까,언젠가 내가 죽고 없는 세상으로   來如哀反多羅 3 이 순간은 남의 순간이었던..

원당일기(22-2) 다시 집으로 / 정용섭 목사

어제 아침 집을 떠나 대구샘터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오후에는 서울샘터교회 예배와 신학공부를 인도했다. 약간 늦은 저녁을 먹은 뒤 서울여성플라자에서 하룻밤 자고, 오늘 오전 10:00-12:30에 기독교장로회 목회연구원 목회학 박사 과정에서 강의한 뒤에 하양에서 볼 일을 보고 한 시간 전에야 다시 원당집으로 돌아왔다.   강행군이라면 강행군이었다. 뭔가를 계속 말해야만 했다. 워낙 말을 잘 할 줄도 모르거니와 말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 불행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그렇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도 언어의 표면에 속한 용(用)이 아니라 심층에 속한 묘(妙)에 대해서 말해야만 할 사람의 운명이라니.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버지의 품, 요한복음 묵상(12) / 정용섭 목사

요한은 18절에서 예수를 가리켜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자’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의 품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일치한다는 뜻이다. 그 독생자 예수가 아무도 보지 못한 하나님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 진술의 근거가 무엇인가?   앞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요한은 예수에게서 궁극의 생명을 경험했다. 그 궁극의 생명이 곧 하나님을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것으로도 다 알려지지 않는다.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궁극의 생명으로만 경험할 수 있다. 그 궁극의 생명도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요한은 지금 예수를 보라고 말하는 중이다. 그에게서 궁극의 생명이 나타났다고 말이다. 궁극의 생명은 무엇인가?   부활이 대답이다. 부활은 죽음의 극복이다. 단순히 다시 ..

하나님을 본 사람, 요한복음 묵상(11) / 정용섭 목사

요 1:18절은 좀 심각한 내용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읽힐 수 있는 사건들이 적지 않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모세도, 여러 선지자들도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다거나 보았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그것은 문학적인 수사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가 없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궁극적인 생명을 본다는 것, 즉 그것을 직접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의 생명이 무언지 모른다. 왜 나고, 늙고, 죽는지 모른다. 그것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지만 그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는 설명들이다. 살아있는 사람 중..

은혜와 진리, 요한복음 묵상(10) / 정용섭 목사

1:14절에 예수의 영광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한다. 은혜와 진리는 보기에 따라서 궁합이 맞지 않는 결합이다. 은혜는 종교적인 개념인데 반해서 진리는 철학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기자가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정확하게 뚫어보고 있다는 증거다. 복음은 은혜이면서 동시에 진리다. 은혜는 진리로 나타나야 한다. 참된 진리를 아는 사람은 그것이 은혜의 차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진리를 단순히 낱말 뜻인 ‘참된 이치’로만 알면 곤란하다. 진리로 번역된 헬라어 ‘알레테이아’는 탈은폐의 능력이다. 은폐된 세계를 드러내는 능력이다. 그런 현상 자체를 가리킨다. 이는 곧 세상이 은폐되어 있다는 뜻이다. 생명도 은폐되어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복음이 그 은폐된 세상과 그 생명을 드러내는 능..

하나님 나라를 위한 멘토가 되라(에스더 2:5-7, 10-11) / 원용일 목사

하나님 나라를 위한 멘토가 되라(에스더 2:5-7, 10-11)우리가 사는 하루의 삶이 권태롭고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날이 반복되는 일상이 따분할 수도 있습니다.그런데 우리의 하루하루는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기여해야 합니다.에스더 2:5-7, 10-115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6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7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