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6 10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고후 7:6-7) / 이금환 목사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린도후서7:6-7) 하나님은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후에 그레데교회를 목회했던 디도를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가졌던 오해를 풀 중재자로 디도를 고린도교회에 보냈었는데, 그 디도가 돌아와서 모든 오해가 풀렸다는 소식과 함께 위로의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고린도교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고린도전서로서 권면한 바울에 대하여 고린도교회는 사도로 조차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파송한 디도의 말을 듣고 고린도..

세계관-경제학1. 성경적 경제체제 / 류현모 교수

인간의 역사는 생산양식의 변천에 따라 수렵과 채집의 원시시대, 왕의 농장이 노예로 운영된 고전시대, 영주와 농노들로 운영된 봉건시대, 대량생산과 무역으로 운영된 자본주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18~19세기에 이르러 자본주의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제어할 수 없이 불안한 시장상황이라는 심각한 폐해를 드러낸다.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제안되었고 지난 세기 동안 많은 나라에서 실험적으로 수행되었지만 또 다른 폐해를 드러내었다. 성경적 경제관이 하나의 경제체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각 체제 속에서 포함된 성경적 경제관을 파악하고 어떻게 조합하여 우리 삶에 실행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는 생산, 운송 및 판매 수단의 대부분을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개인..

팔복(27) 평화와 한민족의 분단 / 정용섭 목사

성서를 비롯해서 온 인류가 평화를 외치며 살았는데도 평화는 요원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근원적으로 이 세상이 생존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대답이다. 사람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모든 동식물을 경쟁을 통해서 진화해왔다. 예를 들자. 케냐의 세렝게티에 일주일 굶은 사자 가족이 있다. 어미 사자들은 사냥을 나갔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누우 떼를 보았다. 이제 사냥이 시작된다. 세렝게티의 평화는 모든 동물들이 배부를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이유로 평화를 파손하지는 않는다.문제는 인간이다. 인간만은 배가 불러도 평화를 모른다. 거꾸로 인간만은 배가 고파도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지금까지는 배가 불러도 평화를 파괴했다. 아마 종말까지 이런 태도를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팔복(26) 에이레노포이오스 / 정용섭 목사

팔복의 목록을 다시 보자. 1) 심령이 가난한 자, 2) 애통하는 자, 3) 온유한 자,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5) 긍휼히 여기는 자, 6) 마음이 청결한 자, 7) 화평하게 하는 자,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여덟 항목이 비슷하다. 서로 중복되는 것들도 있다. 1번의 심령이 가난한 자와 6번의 마음(카르디아)이 청결한 자(카다로이)는 비슷한 의미다. 2번의 애통하는 자는 고난을 당하는 자(루터 번역, Leid tragen)라는 뜻이다. 8번의 박해를 받은 자와 비슷하다. 3번의 온유하다는 말은 5번의 긍휼히 여긴다는 말과 비슷하다. 4와 8은 똑같이 ‘의’에 대해서 말한다. 1-6번은 개인의 내면적 상태를 가리킨다면 7,8번은 밖을 향한 태도를 가리킨다. 소극적인 데서 적극적인 데로..

팔복(25) 소외된 자들 / 정용섭 목사

팔복은 이사야의 메시야니즘이라 할 수 있는 사 61-3절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야)가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나온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회당에서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해서 읽으셨다(눅 4:18). 여기에 열거된 이들과 팔복에 열거된 이들의 상황이 비슷하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서 당신이 메시아냐 하고 질문했을 때 예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 (눅 6:39-49) / 신동식 목사

주님께서 속상해하는 자녀의 모습이 있다면 가르쳐줬는데 따르지 않을 때입니다. 주님은 듣고 행하지 않는 신앙은 주추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말합니다. 흙으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충격에 무너지고 맙니다. 귀만 큰 신자의 모습입니다.주님은 자녀들이 세상의 풍파에 요동하지 않고 튼튼하게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을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들은대로 믿고 행하는 일입니다.믿음은 말씀에 대한 지식과 확신과 일상의 고백입니다. 믿음의 기초가 견고해야 세속의 유혹과 미혹과 풍파를 견딜 수 있습니다.예수님이 전해주는 말씀은 분명합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맹인을 인도하는 자는 눈이 떠 있어야 합니다. 제자..

진짜 같은 가짜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 봉민근

진짜 같은 가짜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글쓴이/봉민근예수 믿고도 삶에 전혀 변화가 없다면 이는 가짜임을 말해준다.진짜 성도는 말씀 앞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화된 삶을 산다.세상에도 교회에도 진짜 같은 가짜가 진짜처럼 판을 친다.말씀을 그야말로 액세서리처럼 보고 듣는 것으로 끝인 사람이 있다.평생을 믿어도 예수 향기가 전혀 나지 않는 조화 같은 신앙인이 있다.오늘날 신앙인들의 가슴에는 뜨거움이 없다.말씀에 대한 갈망이 없다.좀 더 잘 믿어 보려는 의지가 상실되어 적당히 믿다가 천국 가겠다는 심리로 가득하다.왜 변화가 없는 것일까?정답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세상을 더 의지하고 자신의 능력을 더 앞세우기 때문이다.주님 안에 인생의 모든 답이 다 있다는 ..

죄 가운데 허비된 인생 (막 9:42-50) / 김영봉 목사

해설:이어서 예수님은 “죄짓게 하는 것”(42절)에 대해 경고하신다. “작은 사람들”(42절)은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 존재감이 없는 이들을 가리킨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이 절대값으로 동등하게 대접받는 곳이다. 그 나라의 원리와 기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대하든 진심과 성심으로 대해야 한다. 그들 중 어느 하나라도 “죄짓게”(원어의 의미는 “넘어지게”) 하는 것은 무겁고 무서운 죄다.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42절)는 말은 그 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수사법이다.  그런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죄짓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죄짓게 하는 것은 손도, 발도, 눈도 아니다. 마음의 죄성이 손과 발과 눈을 조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

예수님만이 나의 생명의 주, 소망의 주가 되십니다.(눅 7:1-17)

눅 7:1-17 묵상입니다. 말씀의 선포 이후 친히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사죄의 은총과 함께 치유와 회복을 베푸십니다.친히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주이심의 선포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음으로 구하는 이방인 백부장.‘말씀만 하소서 그리하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을 고쳐주십니다. 나인성의 유대인 여자의 아들을 살려주시는 예수님.슬픔을 당한 과부를 긍휼히 여기시며 자비를 베푸십니다. 생명의 주, 위로의 주 되심의 선포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생명의 주, 소망의 주가 되십니다.나의 들숨과 날숨을 주장하시고 자유케 하십니다.그 은혜를 누리며 나누는 오늘이게 하소서!